마니커는 코스닥 벤처기업부에 소속돼 있는 닭고기 회사다. 이 닭고기 벤처기업의 한형석(53) 대표는 젊은시절 꿈이 건축학과 교수였다. 한양대 건축공학과 졸업작품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하지만 대학 졸업후 그가 선택한 길은 꿈과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이 건축학과 졸업생은 먼저 슈퍼마켓을 차렸다. 가정형편이 어려운데다 홀어머니를 모시는 장남으로서 동생의 교육비도 대야 했다. 당시 대기업에 취직해서는 그만한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했다. 2년후 그는 설계사무소에 취직하면서 꿈과의 거리를 약간 좁혔다. 사무소 인근 여관에서 자고 자장면으로 식사를 하면서 일을 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후 3일만에 연일 밤샘 근무에 들어가는 등 일중독을 즐겼다. 그러나 어느날, 한 대표는 가정생활까지 희생하며 건축업계에서 미치도록 일하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동시에 봉급 받는 생활보다 사업이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특히 건설은 있는 자의 향유물로 비쳐지면서 갑자기 건축이 싫어졌다는 것. 때맞춰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접한 한 대표는 한국에서도 육류소비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서 사업 아이템을 잡은 것이다. 대기업이 선점하지 않은 닭고기 시장에 눈길이 갔다. 미국의 닭고기가 반도체클린룸에 맞먹는 청정시설에서 완전 자동화된 생산라인을 가지고 있는 점에 감명받아, 한국에서도 옛날 도계지(닭을 죽이는 곳) 같지 않은 "닭고기 공장"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에따라 85년에 "대연식품"을 창업했다. 그러나 경험부족으로 낭패를 봤다. 공장용으로 김포에 땅을 샀는데 인근에 종계장(닭을 기르는 곳)이 있었던 것. 전염을 이유로 도계사업 허가가 나지 않은 것이다. 이듬해에 부지를 팔고 용인으로 옮겼다. 이후부터는 승승장구하면서 88년에는 성남에 대리점을 두고 자체판매를 개시했다. 90년에는 종계장과 부화장을 갖추면서 수직계열화를 이루었다. 94년 육가공 공장을 인수하면서 통합 일관생산체제를 갖췄다. 한 대표에게 IMF 외환위기는 기회로 작용했다. 대상그룹이 마니커를 사달라고 요청해 온 것. 그는 사업욕심에 덜컥 생산능력이 3배에 이르는 회사를 인수했다고 말했다. 당시 외형이 3백50억원이던 대연이 대상마니커를 인수합병해 탄생한 마니커는 지난해 매출액 7백30억원에 26억원의 순이익을 낸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미국에 처음으로 국산 닭고기를 수출하는 기록도 남겼다. 그는 요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열도 진출이 그것. 한 대표는 거리가 가까운 한국이야말로 일본의 신선육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보고 있다. 동시에 생산기지로 북한의 청정지역을 활용한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031)336-0123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