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내 경제에 통상 마찰이라는 외풍이 거세게 몰아닥치면서 '하반기 회복' 기대가 더욱 불투명해졌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 경기는 여전히 불안하고 한동안 안정되는 듯했던 석유 등 국제원자재 가격은 다시 빠른 오름세로 돌아섰다. 이들 '3대 외환(外患)'에 더해 투자 부진과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노사분규 등 '2대 내우(內憂)'는 국내 경제의 성장 잠재력까지 갉아먹는 결정적 악재로 지적되고 있다. 이달말까지 올 하반기 경제운영 시책을 새로 내놓기로 한 재정경제부 등 정부 부처가 이들 '5대 악재'를 돌파할 어떤 묘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 내우 2제(題) =12일 항공업계를 비롯한 국내 1백25개 노조가 사상 초유의 동시 파업에 돌입하는 등 노사분규가 증폭되고 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양대 항공회사의 파업만으로도 하루 손실이 2백6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대외신인도 추락은 더욱 큰 문제다. '노사 양측의 자제와 양보'를 촉구하며 양비론(兩非論)에 안주하고 있던 정치권과 정부가 뒤늦게 '불법 쟁의 엄단'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이미 때를 놓쳤다는 지적이 많다. 노사 문제에 질겁, 한국행 발길을 걷어들이는 외국 투자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 외국인 직접투자는 지난달 전년동월 대비 26.6% 감소하는 등 SK텔레콤-NTT도코모 지분매각 신고가 접수됐던 지난 1월을 빼고 작년 10월 이후 7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투자 부진도 심각한 우환거리다. 미래 성장을 담보할 설비 투자는 지난 4월중 전년 동월에 비해 5.7% 감소, 작년 11월 이후 6개월째 감소세를 지속했다. 지난해 연간 30.1%의 증가세를 나타냈던 것과 정반대되는 양상이다. 우리 경제가 적정 수준인 5% 정도의 성장을 지속하려면 투자가 GDP(국내총생산) 대비 30% 수준을 유지하고 투자증가율도 매년 8%를 넘어야 한다(삼성경제연구소)는게 전문기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당초 7조3천억원으로 계획했던 올해 투자 규모를 6조1천억원으로 줄인 것을 비롯, 포항제철도 투자 규모를 2조4천2백84억원에서 4천억원 가까이 줄이기로 하는 등 긴축경영 계획을 마련한 상태다. 기업들의 투자 의욕이 바닥으로까지 떨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 외환 3제(題) =가뜩이나 위축돼 있는 국내 수출업계가 해외 주요국들의 잇단 통상 공세로 더욱 어려움에 처했다. 뉴질랜드는 한국산 냉장고 세탁기에 반덤핑 관세를, 캐나다는 냉연강판에 대해 고율의 잠정 관세를 물리기로 최근 발표하는 등 통상마찰 대상국들도 크게 확대되는 추세다. 이에 앞서 미국도 철강 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품목에 대해 세이프가드 발동을 추진하는 등 통상 공격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중국도 자국산 마늘의 대한 수출 부진을 빌미로 정보통신 부문의 수입 축소를 경고하는 등 한국 수출업계를 사면초가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수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국 일본 유럽 등의 경제상황도 기대 이하다. 이에 따라 수출이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낸 데 이어 이달들어서도 지난 11일까지 수출이 32억3천만달러로 전년 동기에 비해 14.2%나 뒷걸음질 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한때 하향 안정세를 보이는 듯했던 국제 원자재가격도 오름세로 되돌아서 국내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국제 유가가 미국 정유시설 폭발사고와 이라크 석유수출 중단 등의 영향으로 배럴당 29달러선을 넘어섰고 한국무역대리점협회의 원자재 수입가격지수인 AFTAK 지수도 지난 5월중 103.97을 기록, 2개월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특히 니켈 천연고무 나프타 등의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전무는 "노사분규 등 기업들의 의욕을 꺾고 있는 5대 악재를 시급히 걷어내지 않는 한 국내 경제침체는 장기화할 우려가 크다"고 경고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