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패션계의 핫이슈는 단연 "영국 패션의 세계시장 재패"다. 영국풍 문양,영국산 소재,영국 디자이너 등 세계 패션계가 온통 영국 물결로 뒤덮이고 있다. 밀라노와 파리 뉴욕 등 패션도시에서 열리는 유명 디자이너의 컬렉션에는 어김없이 스코틀랜드의 타탄(체크)과 아가일(다이아몬드 형태의 무늬),북아일랜드의 도네갈(흑백의 작은 체크)등 전통 문양이 등장한다. 또 영국의 대표적인 소재인 트윌모직이나 캐시미어로 만든 제품은 고급 부틱가에서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동안 한물 간 브랜드로 여겨졌던 버버리는 유행의 중심에 다시 올라섰으며 아큐아스큐텀 엔필 같은 전통적인 영국 브랜드에 패션리더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금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디자이너의 명단에도 영국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존 갈리아노,알렉산더 맥퀸,스텔라 매카트니 등.이들은 크리스찬디올 지방시 등 프랑스와 이탈리아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영국 냄새를 물씬 풍기는 문양들이 여성복 트렌드로 부상했고 킨록앤더슨 아큐아스큐텀골프 등 영국태생 브랜드들의 런칭붐이 불기도 했다. 이같은 영국의 "패션계 왕위 등극"소식에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영국인의 이미지가 화려한 멋과는 거리가 먼데다가 그동안 "패션"하면 먼저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멋없는 섬나라가 패션계의 주목을 받게 됐을까. 업계 전문가들은 그 배경으로 뉴밀레니엄을 맞아 오히려 과거의 전통을 그리워하게된 사람들의 복고성향을 꼽았다. 또 펑크족과 같은 영국 특유의 거리문화에서 나오는 자유분방함이 자유로운 디자인 창작의 원천이 됐다는 점도 거론됐다. 70대 고령의 비비안 웨스트우드부터 30대의 신예 맥퀸까지 런던 거리의 펑크스타일을 고급 패션으로 재현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의 오랜 불황이 영국 패션을 살려냈다는 주장도 있다. 의류회사들이 오랜 불황의 세월동안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가격다툼과 프로모션 전쟁을 거치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영국 정부와 교육기관,기업들이 손을 맞잡고 이뤄낸 산학협동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런던의 패션학교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즈"의 졸업작품 발표회는 언제나 일류 디자이너와 의류업체 사장들로 객석이 빼곡히 메워진다. 실력있는 신인 디자이너들의 스카우트를 위해서다. 백화점들도 디자이너코너를 마련해 놓고 정기적으로 제품을 사들여 군소업체들의 주머니를 채워준다. 전문가들은 "영국 패션의 세계시장 재패의 기반이 이처럼 소리없이 오랫동안 다져진 것인 만큼 한 때의 붐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설현정 기자 s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