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안 < 한영재계회의 회장.현대자동차 사장 > 영국은 한국경제의 성장에 보이지 않게 많은 기여를 한 나라다. 한국 기업들은 개발경제 초기의 각종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영국 기업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얼마 전 작고한 고 정주영 현대회장의 5백원짜리 지폐에 얽힌 일화는 그러한 관계를 생생하게 잘 보여 주는 사례다. 당시 영국 은행의 과감한 금융지원이 없었다면 한국의 조선산업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 조선산업은 자금 뿐만 아니라 기술습득에 있어서도 개방적인 태도를 가졌던 영국 기업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같은 호혜적인 관계는 조선산업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철강 자동차산업 등 현재 우리의 주력 산업 대부분에도 이어졌다. 영국 기술자들이 한국 자동차산업의 한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던 현대자동차의 포니 개발에 참여한 일은 잘 알려진 일이다. 결초보은이라 할까, 지난 40년 동안의 고도성장을 바탕으로 한국 기업들은 1990년대 중반 들어 영국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려 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다음으로 영국에 직접투자를 많이 한 나라가 되기도 했다. 이는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적극적인 투자유치를 한 영국 정부의 노력과 영국을 유럽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삼으려 했던 한국 기업들의 이해가 일치하면서 나온 결과였다. 삼성 현대 LG 등의 대규모 투자가 잇달아 성사되면서 한국을 보는 영국민들의 시각도 크게 달라지고 여왕이 한국 기업의 공장 완공식에 참여에 눈길을 끌기도 했다. 특히 1999년에 있었던 영국 여왕의 한국 방문은 양국 경제협력 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비록 IMF 위기를 맞이 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투자가 잠시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영국은 여전히 EU국가들 가운데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 가장 활발한 나라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영국 기업들의 한국 진출도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통신과 유통산업을 중심으로 BT 테스코 등 영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한국에 속속 발을 내디디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한국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공기업의 민영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면 영국 기업들의 투자는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영국은 1998년 이후 독일을 제치고 EU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자 무역 흑자국이 되었다. 또 1993년 이후 7년째 경기 상승을 지속하고 있으며 실업률 역시 지난 25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작년에 54억달러를 수출하고 26억달러를 수입해 28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이번 총선에서 노동당 정부가 압승을 거둠에 따라 영국의 유로 가입이 앞당겨질 전망이다. 그동안의 파운드의 강세는 한국 기업들이 영국을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삼는데 장애물이 되어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영국의 유로가입은 한국기업에게 새로운 투자 유인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제조업이 쇠퇴하고 있는 영국경제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IMF 위기를 극복하고 제 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양국은 더 할 나이 없이 좋은 협력 파트너가 될 것이다. 특히 신기술과 신산업에서의 경쟁력을 제고하는데 있어 양국의 협력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기초과학이 강한 영국은 생명공학 정밀화학 기술 등에서 여전히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한국은 정보기술(IT) 신흥강국으로 부상하면서 IT산업과 IT를 활용한 전통산업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측면에서 양국 사이의 경제협력 관계는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