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는 7일 국내 경기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기가 이미 저점을 통과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던 지난달 발언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시장에선 도대체 경기가 나아진다는 것인지, 계속 부진할 것이란 얘긴지 갈피를 못잡겠다고 아우성이다. 정부와 한은은 매달 국내외 통계에 일희일비할 뿐 방향 제시나 자신감이 결여됐다는 지적이다. 경기 진단의 혼선 만큼이나 경기부양 논의도 갈팡질팡이다. 민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우리 경제가 갈수록 "천수답" 양상을 보이면서 정책당국의 경기대응 능력도 취약해지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은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콜금리를 현 수준(5%)에서 유지키로 결정했다. ◇ 헷갈리는 경기 발언 =전 총재는 지난달만 해도 "경기가 더 나빠질 가능성은 사라졌다"며 저점 통과를 강력히 시사했다. 그러나 7일 기자간담회에선 "저점통과 여부는 기다려봐야 한다"고 발뺌을 했다. 이는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달 경기회복을 시사했다가 "아직 회복 단계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라고 수정한 것과 유사하다. 한은이 달라진 점은 또 있다. 이달 통화정책 발표문에서 '경기부진 지속 여부에 유의하겠다'고 밝힌 대목이다. 지난달엔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면서 물가압력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었다. 강조점이 '물가'에서 '경기'로 바뀐 것이다. ◇ 상반된 경기지표 =그동안 한국 경제를 견인했던 수출과 설비 투자가 석달째 마이너스다. 산업생산 증가율도 지난 2,3월 회복세에서 4월엔 전월비 마이너스 1.3%다. 공장 가동률도 4월(74.6%)부터 고개를 숙였다. 반면 심리지표인 기업 경기실사지수(BSI)나 소비자기대지수는 넉달째 상승세다. 전경련이 발표한 BSI는 지난 1월 62.7에서 5,6월엔 110대로 높아졌다. 실업률은 4월 3.8%까지 내려갔다. 한은 관계자는 "지표가 엇갈리는 것은 경기회복 기대감이 커졌지만 실물경기가 그만큼 따라주지 않는데 따른 시차 탓"이라고 설명했다. ◇ 부양의지 있나 =올 성장률이 잘해야 4% 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어떻게 경기를 살릴 것인가를 놓고 이견이 많다. 정부는 금리정책에 기대를 건다. 적자재정 우려에다 하반기 만기가 집중된 회사채 소화를 위해서도 금리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은 추계에 의하면 하반기 만기 회사채 32조원(4.4분기 21조원) 중 차환 발행이 어려운 투기등급 이하 회사채가 8조∼13조원(BBB- 등급도 일부 포함)에 이른다. 한은은 이에 대해 물가 압력이 거센 만큼 금리 인하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