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철강 수입규제 움직임을 가시화하면서 대미(對美) 통상전선에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철강 수입규제의 주타깃을 한국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최근 미국 부시 행정부의공세적 통상기조가 뚜렷이 감지된다는 점에서 반도체와 자동차 통상마찰도 결코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우세해지고 있다. 특히 12일 한.미 자동차 MOU 이행점검 회의를 앞두고 자동차시장 수입개방 압력의 파고가 한층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부시 경제팀이 업계의 이해를 강력히 대변해온 보수파와 기업인들로 구성된 데이어 최근 민주당이 장악한 미국 상원의 기류 역시 통상압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어 통상마찰의 파고가 높아질 전망이다. 정부는 오는 24∼29일 장재식 산업자원부 장관의 방미활동을 통해 반도체, 자동차, 철강업종의 통상마찰을 완화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철강을 포함한 자동차와 반도체 통상이슈를 점검해본다. ◇ 자동차 = 12일 국내에서 열리는 한.미 자동차 MOU 이행점검 회의는 '연례회의'이기는 하지만 시기적으로 미국측의 대한 통상압력이 노골화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98년 10월 양국이 합의한 MOU 사항은 ▲소비자인식 ▲관세 ▲자동차 세제 ▲미니밴의 승용차 분류 ▲자가인증제 도입 ▲저당권제도 도입 등이다. 이중 미국측 요구의 핵심은 여전히 소비자 인식개선이다. 작년 한국 자동차업계가 57만3천대를 수출, 미국내 시장점유율을 2.7%로 끌어올린 반면 미국 자동차의 한국 시장점유율은 0.11%(2천500대)에 머물고 있는 근본원인이 바로 소비자 인식 문제라고 미국은 보고 있다. 이에따라 한국 정부가 이같은 인식개선에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측은 그보다는 중대형차 위주의 수입차가 소형차를 선호하는 한국인 기호에 맞지않고, 공장도 가격 자체가 비싼 점 등이 더 큰 원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지난해 산자부 장관이 포드차를 관용차로 구입한데 이어 국세청장 등 고위세무직 공무원이 추가로 구입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나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미국이 이번 회의에서 주력할 대목은 관세인하와 자동차 세제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한국 관세율이 미국(2.5%)보다 3배 높은 8%라며 이를 낮출 것을 요구하고 현행 배기량 기준세제가 중대형 위주의 수입차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며 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측은 관세율이 호주나 EU보다 낮은 수준인데다 이미 차등과세 도입 등 전반적인 자동차 세부담 완화방안을 추진중이어서 특별히 문제될 것이없다는 입장이다. ◇ 반도체 = 하이닉스반도체의 회사채 신속인수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라있다. 1월말 로버트 죌릭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이를 WTO 보조금 지급 규정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데 이어 2월 중순에는 비난결의안이 미국 상원에 제출되면서 본격적인통상이슈로 부각됐다. USTR의 연례 NTE 보고서는 이를 정부의 특혜금융으로 규정했다. 이는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쟁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사가 올들어 막대한 규모의 경영실적 악화를 겪으면서 의회를 등에 업고 압력을 가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우리정부는 분석하고 있다. 이에따라 미국측이 금명간 WTO 분쟁해결 절차나 상계관세 조사 개시 등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절차상 1년이상의 시간이걸린다는 점에서 단순히 압박카드로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현재 정부는미국 행정부와 의회, 업계와의 접촉을 통해 회사채 신속인수의 당위성을 설명하는한편 마이크론사의 제소에 대비한 법적 대응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 철강 = 미국이 수입철강에 대한 201조(긴급수입제한조치) 조사개시를 결정한것은 미국 철강업계의 불황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예견된 사안이었다는 게 정부의시각이다. 다만 최종 조치가 어떤 조건과 내용으로 내려지느냐에 따라 국내 산업에미칠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 정부는 일단 대상국가에 EU와 일본도 포함돼있는 만큼공동전선을 구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미국 정부의 '정치적 접근'에 대한국제적 비난여론 조성을 통해 대응해나가자는 것이다. 정부는 또 이달말로 예정된장재식 장관의 미국 방문때 철강 수입규제에 적극적인 미국 에번스 상무장관과의 면담을 통해 우리 정부의 유감을 표명하고 한미기업협력위원회(CBC) 및 한미철강협의회 개최와 철강업계 대표 사절단 파견 등 가능한 수단을 통해 국내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rhd@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