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의 어깨가 축 처져 있다.

개혁의 선봉장으로 기세 등등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대신 만성 피로를 호소하며 다른 부처로 옮기기를 희망하는 사람들만 늘어가고 있다.

무엇이 공정위 직원들을 이토록 힘들게 만들까.

A과장은 "아무리 해도 업무는 끝없이 늘어나고… 열심히 일한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은 없고… 승진도 까마득하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공정위 직원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첫째 이유는 ''엄청나게 늘어나는 업무량''에 있다.

실제 상당수 공정위 직원들은 일요일에도 출근하고 있다.

평일에도 오후 10시 넘어서까지 근무하는 직원이 허다하다.

위원회에 공식 접수된 사건 건수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지난 97년 3천1백76건에 불과했던 것이 작년에는 6천3백99건으로 불과 3년만에 2배 이상 늘었다.

직원 수는 4백여명 그대로다.

B사무관은 "인터넷이나 전화 문의까지 합치면 업무량은 몇배 더 늘어난다"며 "지금 인원으로는 아무리 기를 써도 업무를 다 처리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심지어 남편이 우월적인 지위를 남용해 자신을 구타했으니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처벌해 달라는 한 여성의 전화를 받았을 정도"라며 "국민들은 공정위가 모든 불만사항을 처리하는 곳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며 곤혹스러워 했다.

공정위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인사 적체''다.

같은 고시 동기라도 공정위 직원들은 다른 부처에 비해 3∼4년 정도 뒤처진다.

국장급 이상 고참 간부들이 자리를 ''꽉''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지난 9일에는 일부 과장들이 선배 공무원들을 겨냥해 ''용퇴해 달라''는 글을 공정위 홈페이지에 올리기까지 했다.

C사무관은 "인사 적체는 가장 심각한 문제"라며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는 공무원에게 승진 만큼 중요한 사항이 또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공정위의 인사 적체 문제는 쉽게 풀 수 있는게 아니다.

재정경제부나 산업자원부처럼 산하기관이 없는 탓에 고참들이 용퇴해도 옮길 자리가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힘이 돼 줬던 언론마저 지난 2월 ''신문고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뒤부터는 공정위에 집중 포화를 퍼붓고 있다.

여기에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등 다른 정부 부처들도 공정위의 ''강경론 위주의 정책방향''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특히 기업 규제 완화 문제를 둘러싸고는 재계와 다른 정부 부처들이 공정위를 협공하고 있는 형세다.

''공정 경쟁을 위한 심판자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자위하지만 이래저래 공정위 직원들의 피로는 쌓여만 가고 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