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엔(¥)"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사카키바라 에이스케(60) 일본 게이오대 교수가 지난 18일과 19일 국제통화기금(IMF)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공동 주최한 "한국 경제의 위기와 회복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경제신문 최경환 전문위원이 최근의 엔시세 흐름과 국제금융시장 동향에 대해 그와 대담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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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환 전문위원 =한국의 구조조정에 대해 평가한다면.

<>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본 게이오대 교수 =1단계 구조조정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그러나 정권 후반기에 접어들며 구조조정에 대한 피로감을 겪고 있는 것 같다.

기업.금융권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 최 =대기업 규제 완화를 둘러싸고 한국 정부와 재계간에 첨예한 입장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데.

<> 사카키바라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성급하게 미국식 제도를 도입했다.

부채비율 2백%가 대표적인 예다.

재벌 개혁에 대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한국적 특성을 고려한 독자적인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 최 =이달 초 하와이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ASEAN)+3개국(한국 중국 일본)" 재무장관 회담에서 한국과 일본이 통화스와프(원 또는 엔화를 맡기고 달러를 빌려오는 것) 규모를 기존의 50억달러에서 70억달러로 늘리기로 합의했는데.

<> 사카키바라 =지역 금융협력을 위한 큰 진전이라고 본다.

현재 전 세계에서 지역 금융협력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은 한국 일본 중국 단 세 곳 뿐이다.

"ASEN+3"은 지역협력을 위한 좋은 모델이다.

지역 금융협력과 관련해 논의됐던 AMF(아시아통화기금) 신설 방안은 미국의 반대로 현재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통화스와프는 규모에 상관없이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최근엔 중국도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지만 AMF 신설안안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부에선 아시아개발은행(ADB)과 AMF의 기능이 중복될 것으로 우려하지만 서로 보완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더구나 일본과 한국은 대미 의존도가 너무 높아 교역 대상국을 다변화할 필요도 있다.

한국 중국 일본간 협조체제를 공고히 해 지역 협상력을 키워 나가는게 바람직하다.

<> 최 =일본 경제는 언제쯤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나.

<> 사카키바라 =단기적으로 일본 경제가 회복되기를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올해 일본 경제 성장률은 당초 목표치인 1.7%에 훨씬 못미치는 ±1%로 예상된다.

금리인하 등 통화정책은 경기 회복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정권이 구조조정을 제대로 추진한다면 1년후엔 경기 회복을 기대해 볼만하다.

그러나 고이즈미는 자민당내 지지기반이 취약하다.

더구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올해 안에 30조엔 가량의 공적자금이 추가로 투입될 것으로 본다.

고이즈미가 앞으로 어떻게 지지세력을 확보해 나갈지가 문제다.

<> 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엔화약세를 용인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 사카키바라 =지나치게 강한 엔이 경제 회복에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본은 이중적인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소니 도요타 같은 수출기업 입장에서는 환율이 1백엔~1백10엔까지 떨어져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하지만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제조업체들은 PPP(구매력기준 환율)로 따지면 1백70~1백80엔 정도는 돼야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실제 1백70엔대까지 환율이 치솟는다면 도요타자동차가 전세계 시장을 석권할 것 아닌가.

이중 경제 구조를 간과한 채 엔화약세를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 최 =향후 엔환율 전망은.

<> 사카키바라 =앞으로 1~2개월간은 1백20~1백25엔 범위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을 비롯 세계 경기침체가 계속된다면 3~6개월 후엔 1백30엔선까지 움직일 가능성이 많다.

<> 최 =외환위기 당시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한국에 대한 지원을 거부했다는게 사실인가.

<> 사카키바라 =일본이 한국을 돕는다고 해서 한국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당시 일본 경제상황도 좋지 않았다.

전세계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에 당시 미쓰즈카 대장상이 임창열 부총리에게 IMF와 협상을 추진하라고 조언했던 것 같다.

정리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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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카키바라 누구인가 ]

사카키바라 교수는 클린턴정부 후기 재무부 장관이었던 로렌스 서머스나 헤지펀드의 귀재 조지 소로스 등과도 친분이 깊다.

지난 95년 대장성 국제금융국장으로 부임한 후 당시 달러당 79엔까지 치솟은 엔고 열풍을 엔약세로 뒤집어 놓은 장본인.

덕택에 뉴욕타임스로부터 "미스터 엔"이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시절 차관급으로 승진해 국가 1종 공무원시험을 보지 않고 대장성 최고위직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