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재계가 기업규제를 풀기위해 머리를 맞대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국민들의 반응 역시 풀 것은 풀라는데 모아진다.

개혁 대 반개혁의 구도가 아니라 경제를 살리기 위한 실질적인 규제완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인 만큼 성과도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모처럼의 시도가 낡은 규제의 틀은 그대로 둔 채 지엽말단의 예외 규정만 대폭 확대하는 식의 미봉과 호도에 그쳐선 안된다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기업은 기업인에게 돌려주고 경영권은 경영자들에게 반환하는 획기적인 개혁이 돼야 한다.

경영의사 결정을 여론에 맡기려는 그 어떤 시도도 용납돼서는 안된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미명 아래 선진국에서조차 시험 중인 이 나라 저 나라의 제도를 무분별하게 짜깁기 도입하는 어설픈 구조개혁론도 중단돼야 한다.

출자총액 제한이며 30대 기업 집단 제도며 사외이사 의무화 등이 모두 그런 범주에 속한다.

기업은 제도의 시험장이 아니며 경영선택은 제3자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시장경제 철학의 핵심이다.

바로 이 철학에 맞게 고치자는 것이다.

대기업 경제력 집중이 문제라고 하지만 삼성전자와 포항제철 한통 한전 SK텔레콤을 모두 합해 6번을 곱해야 겨우 미국 GE 하나의 시가에 미칠까 말까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에 상장된 1천여개 기업의 시가총액은 2백65조원이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 1개사 시가총액 3백50조원에 90조원이나 떨어진다.

국내에서의 덩치를 이유로 출자와 투자활동을 묶는다는 것은 한국 기업의 국제적 도약을 원천 봉쇄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

적어도 국제적 비교라는 관점에서 한국의 대기업은 아직 구멍가게에 지나지 않는다.

핵심사업에 주력하라는 주장도 허구에 가깝다.

IT혁명이며 신경제라고 불리는 새로운 현상의 골자는 전통기업의 업무영역이 붕괴되는 것을 뜻할 뿐이다.

기업의 투명성은 회계장부의 투명성 하나면 충분하다.

죽이는 개혁이 아닌 살리는 개혁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관료지배로부터 기업인 지배사회로 바뀌어야 하고 훈수하고 간섭하는 사람보다는 일하는 사람이 많은 경제구조로 가야 한다.

바로 이것이 지금 정부가 할 일이다.

뒤늦게 깨닫는 지혜도 지혜다.

지난 3년여의 개혁방향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를 인정하고 고쳐야 한다.

정규재 경제부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