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이 추진해온 조세회피처(tax-haven)에 대한 규제가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미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마련한 규제안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때마침 영국에서 대책회의를 갖고 있던 조세피난처 대표들도 즉각 환영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조세피난처로 지정된 35개 국가가 오는 7월까지 세제개혁안을 내지 않을 경우 강력히 규제하겠다는 OECD 계획은 당장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 조세피난처를 통한 금융거래 확산 =조세피난처는 역외금융센터의 일종으로 현지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도 외화표시 금융업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규제완화나 조세감면같은 특혜가 제공되는 곳이다.

현재 세계 3대 조세피난처로는 카리브해 연안과 말레이시아 북동부,아일랜드가 꼽히고 있다.

이중 카리브해 연안은 OECD가 조세피난처로 지정한 35개국 가운데 절반이 넘는 18개국이나 속해 있는 지역이다.

이들 지역에 대한 자금공급은 돈세탁을 위해 들어오는 각종 리베이트성 자금과 정치자금, 마약과 같은 불법자금, 조세감면을 위한 탈세자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대외신용 유지차원에서 개도국 기업들의 변칙성 외화거래 창구로도 자주 이용되고 있다.

거래되는 자금의 특성상 정확한 규모 파악은 어려우나 이들 조세피난처를 통한 금융거래 규모는 전세계 금융거래의 최대 2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움직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국제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각국이 조세피난처에 대한 다양한 규제방안을 모색해 왔으나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가 주도한 규제방안일수록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국지적인 금융안정망이 강조되는 것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쉽게 이해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국제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IMF와 같은 국제기구들이 제 역할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는 조세피난처를 국제금융감시망에 편입시켜야 한다.

그동안 OECD 차원에서 다양한 규제방안이 논의돼 왔으나 그 내용은 이들 지역과의 정보교류를 차단한다든가,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등의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에 그쳐 왔다.

조세피난처를 규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안은 이들 지역에서 거래되는 금융거래에 대한 세금을 올리는 것이다.

모든 금융거래에 부과되는 세율을 전세계적으로 평준화시키는 방안이다.

OECD도 조세피난처에 속한 국가들의 과세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문제는 이같은 과세 강화방안이 조세피난처의 고유권한을 침해하는 소지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조세피난처에 속한 국가들은 OECD가 본격 규제에 들어갈 경우 자신들의 국민소득(GDP)이 40% 가까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더욱이 섣불리 규제하다간 이 지역에서 거래되는 자금의 성격상 통화가 퇴장(hoarding)하면서 국제신용 경색현상과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 한국은 어떤가 =그동안 한국은 이들 조세피난처로부터 무시할 수 없는 고객으로 대접받아 왔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에는 정책당국의 외자선호정책과 맞물려 말레이시아, 아일랜드를 통한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나 국내기업들의 ''변칙성 외자도입''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으나 최근들어 이 지역을 이용하는 한국 고객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도 조세피난처를 통한 돈세탁 방지를 위해 관련법이나 외화감시체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상춘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