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과 대기업의 정면승부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벤처기업이 대기업 주도의 시장에 도전장을 내는가 하면 후발 대기업에 대해 한판 대결을 불사하는 벤처기업이 잇따르고 있다.

양측의 관계가 "종속"에서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PC 휴대폰 등 일부 시장에서는 벤처기업과 대기업간 경쟁이 일반화돼 있지만 갈수록 이같은 분야가 늘어나고 있다.

불공정 거래의 대명사격이었던 대기업의 중소(벤처)기업 영역 "침범" 시비는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서울대 주우진 교수(경영대)는 "대기업의 구조조정과정에서 전문인력이 벤처기업쪽으로 대거 옮겨가 벤처기업의 기술경쟁력이 한단계 도약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벤처붐에 따른 투자위주의 자금순환 역시 벤처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는 분석이다.

벤처기업이 대기업과 진검승부를 펼치고 있는 주요 분야를 짚어본다.

<> 개인휴대단말기(PDA) =올해 15만대의 내수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점쳐지는 PDA는 절반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제이텔과 싸이버뱅크 등 벤처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LG전자가 국내 처음으로 개발했지만 인식부족과 외환위기 등으로 실수요가 일지 않아 사업을 접었던 아이템이다.

하지만 인터넷붐과 함께 시장여건이 무르익으면서 벤처기업들이 시장을 선점했다.

싸이버뱅크의 이승현 팀장은 "대기업에서 PDA 연구를 하던 기술인력들이 대거 창업에 나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이지팜 등을 내놓고 있으나 점유율은 한자릿수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했다.

LG전자는 올 하반기 출시를 준비중이며 LG-IBM은 외산을 들여오고 있다.

<> 터치패널 =터치(손대는 것)하는 것만으로 명령을 인식케 하는 패널로 국내에서는 삼성SDI만 생산해 왔으나 시장이 폭발하면서 지난해부터 벤처기업의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올해에만 세계시장이 연간 1억5천만장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I가 월생산규모를 작년 30만매에서 올들어 60만매로 늘린 것도 이같은 고성장을 반증한다.

아이티엠은 최근 경기 평촌공장에 월 20만장 수준의 3차원 터치패널 생산시설을 갖추고 가동에 들어갔다.

스마트디스플레이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 화성에 월 40만장 규모의 터치패널 공장을 운영중이다.

<> MP3플레이어 =지난 97년 새한정보시스템이 이 제품을 세계 처음으로 상용화한 후 1백30여개 벤처기업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한국이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양산을 하는 벤처기업은 10여곳에 이른다는게 업계의 분석.

연간 15만대에 달하는 내수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절반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디지탈웨이 유니텍전자 등 독자브랜드로 승부를 거는 벤처기업이 늘고 있다.

최근 소니 필립스를 비롯 인텔까지 진출, 세계시장을 놓고 치열한 시장쟁탈전이 예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종주국의 위치를 유지하려면 벤처기업과 대기업의 전략적 제휴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 개인용 비디오레코더(PVR) =TV를 보면서 녹화하는 것은 물론 생방송을 일시정지시킨 뒤(이 시간동안 하드디스크에 저장) 광고를 보지 않고 프로그램만 즐길 수 있는 차세대 VTR.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디지털앤디지털이 오는 6월 시판키로 했다.

LG전자는 하반기중 이를 출시할 예정이다.

PVR은 1999년 미국에서 처음 상용화됐으나 워낙 비싼 가격 때문에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디지털앤디지털의 이규택 대표는 "세계적으로도 고급VTR 가격대(30만원선)에 공급할 수 있는 PVR은 처음 개발된 것"이라며 "VTR를 생산하는 중국의 3대 가전사중 1개사와 중국에서 PVR를 제조 판매하는 방안을 협의중"이라고 말했다.

<> 유기EL =휴대폰용 차세대영상표시장치로 떠오른 아이템으로 엘리아테크와 네스디스플레이 등이 양산을 서두르고 있다.

대기업군에선 삼성SDI가 부산공장, LG전자가 구미공장에서 연내 생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엘리아테크 박원석 대표는 "삼성 LG 현대가 독주해온 LCD에 비해 시설투자비가 10%에 불과해 벤처기업도 해볼만 하다"고 말했다.

올해 29억9천만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세계시장은 산요 소니 등 일본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유기EL은 "영상표시장치=대기업 아이템"이란 등식을 깬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브라운관과 LCD로 대표되는 영상표시장치가 신기술 등장으로 다양화되면서 기술력을 앞세운 벤처기업의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소프트픽셀이 플라스틱 LCD 개발에 나선 것도 한 사례다.

<> 기타 =일본이 독주해온 2차전지 시장에서는 삼성SDI LG화학 등 대기업에 이어 바이어블코리아 코캄엔지니어링 등이 잇따라 참여했다.

가전 3사의 전유물이던 TV시장에서도 현우맥플러스가 지난해 시네마플러스란 브랜드로 도전장을 던졌다.

디지탈디바이스는 최근 42인치급 PDP TV를 개발, 해외시장 공략에 나섰다.

대기업의 독무대였던 전기밥솥 시장에서도 성광전자와 대웅전기가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등 벤처기업 파워가 강해지고 있다.

광통신용 송수신 모듈시장에서는 에이티아이 빛과전자 등이 삼성전자 등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 과제 =벤처기업과 대기업이 상호 경쟁관계로 치닫는 것은 소모전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벤처기업과 대기업간의 경쟁과 협력이 향후 한국 산업계의 화두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벤처기업과 대기업은 인력 및 자금 등 요소시장에서는 경쟁관계에 있으나 부가가치 측면에서는 보완관계에 있다"(성소미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는 것이다.

싸이버뱅크가 개발한 휴대폰 기능의 PDA를 삼성전자가 생산중인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기술력을 가진 벤처기업에 삼성의 생산능력이 가세함으로써 세계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윈윈형 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언오 상무는 "정부는 벤처기업 보호에 매달리기 보다는 불공정거래와 불법적인 인력유출 방지 등 시장에서 공정한 게임을 벌일 수 있는 룰(규칙)을 만드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