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정책과 관련해 정부와 재계간 공방이 뜨겁다.

그 공방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것이 30대 기업집단에 대한 출자총액 규제다.

출자총액 규제란 흔히 재벌이라 불리는 30대 기업 집단은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의 25% 이내에서만 다른 회사주식을 보유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제도를 말한다.

물론 대기업의 상호출자를 통한 소위 선단식 경영을 막겠다는 것이 이 제도의 취지다.

이 제도가 정부와 재계간 뜨거운 쟁점으로 등장한 까닭은 뭘까.

문제의 발단은 환란 직후인 98년 폐지됐던 이 제도가 올해 4월 부활되면서 시작됐다.

출자총액 제한은 98년 당시 IMF의 요구로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국내기업들에 대항수단을 줘야 한다는 이유로 폐지된 바 있다.

그 후 대기업들은 정부가 밀어붙인 부채비율 2백%를 맞추기 위해 증자에 나섰으나 당시 주식시장 침체로 실권주가 발생하자 계열사가 이를 떠안게 됐다.

그 결과 출자총액은 크게 불어났고 정부가 이를 빌미로 제도를 부활하게 됐다.

이렇게 되자 내년 3월 말까지 14조원으로 추정되는 한도 초과분을 처분해야 할 재계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주식의 대량 처분에 나설 경우 증시 침체를 더욱 부채질할 우려가 있고,신규 투자는 엄두도 낼 수 없어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는 4조원 정도로 추정되는 주식 매물을 향후 1년간 분산 매각할 경우 증시에 큰 부담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타 회사 출자가 아닌 내부 투자까지 제한하는 것은 아니라며 반론을 펴고 있다.

그러나 재계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를 계속 받아서는 세계적인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에 있다.

사실 순자산의 1백% 이내로 유명무실한 규제를 하고 있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가 기업들의 출자총액을 규제하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다.

이러다 보니 아무런 제약 없이 투자를 할 수 있는 다국적 기업에 비해 국내기업이 불리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요즈음 같이 경제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기업 생존 전략의 핵심인 투자를 제한한다는 것은 시대착오라는게 재계의 기본 인식이다.

더욱이 이 제도로 인해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국내 기업의 인수합병에 있어 혜택은커녕 역차별을 당하다 보니 대기업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폐지됐던 제도를 성급하게 부활시킨 정책의 무원칙성은 차치하고라도 재계의 불만을 엄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문제가 많은 제도임이 분명하다.

정부에서는 선단식 경영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이를 통해 과연 선단식 경영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인지,더 나아가 방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냉정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제도가 폐지되기 전인 98년 이전에도 선단식 경영은 있어 왔고, 다국적 기업들도 다각화라는 이름으로 선단식 경영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채비율 2백% 규제, 시장에 의한 감시로 과거와 같이 차입을 통한 무분별한 계열사 확장은 더이상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대마불사 신화가 깨진 지금 그렇게 할 재벌도 없다.

출자총액 제한제도는 폐지되거나 일본과 같이 규제라기보다는 느슨한 가이드라인 정도로 완화할 때가 됐다.


최경환 < 논설.전문위원.경제학 박사 kghwchoi@hankyu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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