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개혁 드라이브와 재계의 규제완화 요구가 평행선을 긋고 있다.

재계는 정부가 3년여만에 부활키로 한 총액출자제한 제도 등 "기업 개혁 프로그램"이 자칫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오히려 가로막는 "악법"이 될 수 있다며 연일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0일 회장단 회의를 열어 공정거래법 등 7개 분야의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긴급 정책건의서"를 내놓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부와 재계는 오는 16일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간담회를 갖고 규제완화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어서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정부는 아직까지는 9일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을 통해 거듭 확인한 "개혁 불가피론"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강운태 제2정조위원장이 "고칠 것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은 귀담아 들을 대목이다.


◇ 글로벌 스탠더드 공방 =재계는 정부에 대해 ''정책 개입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벗어났다''고 비판하고 있다.

유례가 없는 ''30대 기업집단 지정'' 제도를 만들어 출자총액을 규제하고 지주회사 설립을 제한함으로써 "생존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투자 및 사업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하는 등 갈 길 바쁜 기업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고 하소연한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개혁의 좌표로 제시해 온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기준)''를 무시하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재계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위배하는 과도한 정책 개입의 대표적 사례로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부활을 꼽는다.

세계적으로 기업의 출자총액을 제한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 일본밖에 없으며 그나마 일본은 자본금 1백억엔(또는 순자산 3백억엔)이 넘는 기업에 대해 규제 한도를 자본금의 1백%로 제한하고 있어 실제 한도에 걸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

반면 우리나라는 기업의 출자총액을 순자산의 25% 이하로 규제하고 있어 신규사업 진출이 봉쇄된 상태다.

◇ 기업에 대한 기본인식 =재계는 정부가 대기업 출자 등 기업활동을 ''생산''이 아닌 ''지배''의 관점에서 보는 발상부터 혁파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업종별 특성을 무시하고 모든 기업들에 부채 비율을 단기간내 2백% 이내로 축소토록 의무화하고 상장 대기업들에 대해 과반수 이상의 사외이사 비율을 의무화하는 등의 규제 조치들이 기업활동을 ''색안경''으로 보는데 따른 소산이라는 지적이다.

LG경제연구원 이윤호 원장은 "기업의 자율적 선택 변수를 놓고 정부가 나서서 획일적인 목표 비율을 설정하고 규제하는 것은 무리"라며 "규제 만능주의는 규제정책의 악순환을 낳고 기업의 실질적인 구조조정과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규제 일변도의 관치 기업정책이 빚고 있는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정부 내에서도 조심스런 반성론이 제기되고 있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의 국내 경기침체는 일차적으로는 미국 일본 등 해외 주요국들의 경기 부진에 큰 영향을 받은 결과"라며 "그러나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규제장치의 온존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지 않은가를 폭넓게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진념 경제부총리가 ''시장 원리에 위배되는 규제의 전면 재검토'' 발언을 내놓은 것도 이런 상황 인식을 담고 있다는 얘기다.

''경영권을 경쟁의 주체인 기업들에 돌려줘야 한다''는 점증하는 비판을 정부가 어떻게 소화할지 주목된다.

이학영 기자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