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극복한 한우물 주물인생"

오세철(67) 서울엔지니어링 사장은 평생을 주물과 함께 했다.

녹인 금속을 형틀에 넣어 다양한 형태의 주조 제품을 찍어내는 주물은 3D 업종에 속한 제품.

작업장 용해로에선 불꽃이 치솟고 작업복도 금새 시커멓게 된다.

그러나 오 사장의 한우물 파기 주물 인생에는 불순물이 없다.

최고의 기술을 요구하는 주물제품은 그의 손끝에서 빚어져 나온다.

오 사장은 풍구와 란스노즐,냉각반 등을 개발했다.

제철소 용광로와 전기로에서 사용되는 필수 부품들이다.

서울엔지니어링의 주물 제품은 국제시장에서 최고로 꼽힌다.

일본의 신일본제철,이탈리아의 일바,오스트리아의 푀스트알핀,대만의 차이나스틸,프랑스의 솔락,벨기에의 코크릴샘브레,독일의 티센등 세계 25개의 쟁쟁한 제철소들이 서울엔지니어링의 제품을 쓴다.

국제시장에서는 서울엔지니어링이 고로 부품업체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선 독점 생산한다.

매출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백49억원에서 올해는 1백7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오 사장이 이 위치에 서기까지 가시밭길을 걸었다.

서울대 금속학과를 졸업한뒤 10년 가까이 기계와 주물 제조회사에 근무하다가 지난 68년 35세의 나이에 창업자의 길로 들어 섰다.

기계 및 주물 부품은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창업 5년만에 15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탄탄한 중소기업 반열에 올랐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창업 16년이 채 안돼 위기가 찾아왔다.

사업 확대를 위해 저리의 정책자금 7억원을 빌려 설비를 확충한 것이 화근이었다.

예측 못한 불경기를 맞아 지난 84년 부도를 내고 말았다.

이때부터 피를 말리는 법정관리가 시작됐다.

오 사장은 정리정돈등 5S 운동을 비롯해 품질관리에 주력했다.

어려운 와중에도 매출액의 6%를 기술개발에 투자했다.

가족을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고 회사 살리기에 매진한 오 사장을 보면서 사원들은 무분규로 화답했다.

그는 회사 재도약을 위해 풍구등 고로 부품에 승부를 걸었다.

생산업체 수가 적은데다 상당한 기술력이 요구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시제품을 포항제철에 성공적으로 납품한뒤 오 사장은해외로 눈을 돌렸다.

지난 95년 독일 만(MAN)사의 스페인 공장과 풍구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고로는 1년내내 가동된다.

만약 풍구가 고장나면 한시간에 1억원이상의 손실이 발생한다.

믿을 수 있는 회사가 아니면 결코 거래관계를 맺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제철업계로부터 신뢰를 얻어낸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전세계 제철소 공략에 나섰다.

품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얻으면서 다른 유명한 제철소에도 납품이 이어졌다.

드디어 95년이후 매출이 증가세로 반전됐다.

지난 96년 9월 서울엔지니어링은 12년만에 법정관리의 굴레를 벗었다.

당초 예정보다 2년을 앞당겼다.

최근 들어 미국 US스틸의 상징적 고로인 개리 13고로와 미주지역 최대 고로인 인랜드 스틸의 7고로에 소요되는 풍구의 주공급자로 선정되는 쾌거를 달성했다.

한우물을 파온 오사장의 인생역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지난달에는 풍구가 산업자원부로부터 세계시장 경쟁력 1위 품목에 선정됐다.

서울엔지니어링은 오는 2004년께 무차입 경영을 내다볼 정도로 우량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오 사장에게는 기업을 소유하겠다는 욕심이 없다.

때가 되면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소유 주식도 회사몫으로 돌리겠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그에게는 숱한 역경을 극복하면서 익혔던 근검절약 정신이 여전히 남아있다.

인천 주안공단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아직도 시멘트 바닥이다.

소파도 너무 닳아 앉기가 불편할 정도다.

마치 시계가 70년대에서 멈춰선 듯 하지만 서울엔지니어링의 제품은 시대를 앞서가고 있다.

(032)863~9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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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김희영 기자 song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