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논쟁''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정부와 재계간 기업규제 공방과 관련, 정부측이 정면 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9일 재계가 주장해온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철회와 30대 기업집단지정 제도 변경 요청 등과 관련, ''현 시점에서 부적절한 요구''라며 거부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오전 전격 기자간담회를 소집해 이같은 의사를 밝혔다.

정부 내에서의 ''조율''을 거쳤을 것임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청와대는 전날 대변인을 통해 재계의 정책 비판과 관련, ''인체에 신진대사가 불가피하듯 어떤 시대에도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는 논리로 핵심 개혁정책을 고수할 뜻을 분명히한 바 있다.

오는 16일로 예정된 정.재계 간담회를 앞두고 정부측이 이같은 강경 방침을 연달아 천명한 배경이 주목된다.

16일 간담회에는 진념 경제 부총리 등 장관들과 재계 대표들이 참석해 규제완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재계는 10일 열리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어떤 형태로든 공동 입장을 정리할 전망이다.

◇ 평행선 긋는 ''개혁 공방'' =이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계열사 수를 늘리고 비관련 부문으로 팽창하는 등 재벌 행태에는 큰 변화가 없다"며 대기업 그룹들을 계속 정부의 ''관리 대상''으로 둘 것임을 명백히 했다.

내년 3월 시한까지 출자총액 초과분을 해소하지 못하는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제재하겠다는 강경 방침도 확인했다.

이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진념 부총리가 지난 4일 한 조찬강연에서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규제 조치들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언명한 것과 대조된다.

물론 진 부총리도 대기업들의 재무구조 개선과 핵심역량 강화 등 이른바 ''5+3 원칙''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혀 출자제한의 철회는 검토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재계는 정부가 올들어 부활시킨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야말로 규제 완화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뜩이나 경기 침체로 기업 하기가 힘들어진 마당에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마저 출자총액제한 조치로 발목이 묶여서는 안된다는 것.

◇ 주목되는 규제완화 ''수위'' =공정위는 일단 재계의 이런 요구에 대해 정면 거부방침을 재확인했지만 관계 부처간 후속 협의과정에서 규제 수위가 다소 조절될 소지도 없지 않다는 관측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산업자원부의 움직임이다.

산자부는 현재 25%로 돼 있는 순자산 대비 출자총액제한 비율을 30%로 완화하는 등의 중재안을 다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공정위와의 조율 결과가 주목된다.

또 공정위측도 전반적인 규제 원칙을 놓고 재계와의 대화 창구를 열어놓고 있음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기업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가 있다면 기본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선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전경련에 언제든지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보다 시간을 갖고 재계가 요구하는 규제완화 요구사항을 폭넓게 재검토할 것"이라며 "오는 16일의 정.재계 간담회에서 서로의 입장을 개진한 뒤 내달중 규제완화 조치를 확정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해 후속 작업과정이 주목된다.

이학영 기자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