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벤처기업과 중소기업들의 자금사정이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작년중 벤처캐피털회사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던 벤처기업들은 이제 "2차 펀딩"을 해야할 단계이지만 투자분위기 위축으로 전혀 돈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급전을 의지하던 명동 사채시장마저 세무조사 여파로 꽁꽁 얼어붙어면서 일부 기업들의 자금난은 더욱 심해지는 양상이다.

◇ 자금난 현황 =소프트웨어업체인 B사는 2주 전부터 50억원 가량의 급전이 필요해 융통어음을 할인하러 명동 사채시장을 찾았다.

그러나 자금 사정이 워낙 좋지 않아 돈을 빌려줄 전주(錢主)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곳저곳 다니다보니 어느새 사채업자들이 부르는 이율은 월 3∼4%로까지 올랐다.

자금난을 겪는 대기업이 할인받는 월 2%보다 두 배 가량 높은 수준이었다.

그같은 이자를 물고서라도 돈을 빌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채시장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급전직하로 악화됐다.

평소 알고 지내던 전주들이 대부분 잠적했거나 ''개점휴업''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요즘 사실상 존폐 기로에 놓여 있다"고 하소연했다.

인터넷 서비스회사인 N사, 식품업체인 또다른 B사 등도 융통어음을 할인하려고 명동 사채시장을 두드렸지만 ''허망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중견기업인 B사는 5억원 정도만 빌리면 됐지만 사채업자들은 ''꿔줄 돈이 없다''며 외면했다.

부천에서 가공기계와 전기로를 생산하는 회사의 P(45) 사장.

3천만원짜리 당좌어음을 막을게 있어 사흘간의 급전이 필요했다.

종전에도 어음을 맡기고 하루 1%의 금리를 부담해가며 돈을 끌어다쓰곤 했다.

그러나 최근 찾아간 명동 시장은 싸늘하기만 했다.

결국 당좌를 막지 못했고 P사장은 사업을 포기한 채 도망다니다시피하고 있다.

이같은 직접적인 자금조달뿐만 아니라 변칙적 형태의 자금줄도 막혀 있는 실정이다.

벤처인큐베이팅 업체의 한 관계자는 "일부 벤처기업중엔 사채업자들로부터 급전을 빌려 자본금을 부풀린 후 하루만에 되돌려 주는 가장납입 형태의 증자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구주 매각을 통해 돈을 조달하는 방법이었지만 요즘엔 이것마저도 자취를 감췄다"고 설명했다.

◇ 해결책은 없나 =기협중앙회에 따르면 중소기업중 사채를 이용하는 업체 비중은 작년에 11%로 조사됐다.

지난 99년의 2.5%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평균 대출금리는 월 2%로 나타났다.

은행 등 제도권 금융사들의 금융중개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일부 중소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고리(高利)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언오 상무는 "사채시장은 필요악과도 같은 것"이라며 "편리성으로만 본다면 제도권 금융보다 나은 장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의 세무조사와 관련, 그는 "악덕업자를 단속하는건 바람직하지만 금리 상한선을 두고 사채시장을 점차적으로 양성화하는 방안에 관해서도 정부는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협중앙회의 홍순영 상무도 "폭력을 동원한 고리 사채업자를 근절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된다"며 "제도권에서도 급전을 구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전조달 시장''의 공백 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일시 자금난을 겪는 벤처.중소기업들은 자칫 회복할 수 없는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성태 기자 ste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