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를 항상 최적의 상태로 유지할 수는 없을까.

최근 세계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기업 경영자마다 이같은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

재고 관리술이 곧 경쟁력의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항상 수요를 조금 초과한 재고만을 유지, 기업의 경쟁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주목받는 기업이 있다.

델컴퓨터가 바로 그 주인공.

경기침체가 심화될수록 델컴퓨터는 더욱 빛을 발한다.

관련업계도 델의 효율적인 재고관리술은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델의 비즈니스모델에 관한 책도 산더미처럼 쏟아지고 있다.

인터넷 관련회의가 있는 곳마다 델의 공급망과 재고관리술에 대한 설명이 꼭 따라붙는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메이태그나 GM 같은 전통적인 거대 제조업체들도 델을 배우기 위해 "벤치마킹 순례"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클 델 회장도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젝 웰치 회장 이후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컴퓨터업체마다 잇달아 실적악화 경고를 내고 있지만 델은 올 1.4분기에 지난해 동기보다 34.3% 증가한 4백16만대의 컴퓨터를 팔아 컴팩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델컴퓨터가 처음 문을 연 것은 지난 84년.

IBM이 개인용컴퓨터를 처음 선보인 후 컴퓨터 부품을 조립, 대학가를 중심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델은 자체 연구소와 제조공장 없이 조립과 마케팅에만 주력했다.

이것이 바로 델의 효율적인 직판 모델이다.

PC는 미리 부품을 주문하거나 제작하지 않고 표준화된 것만을 사용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점차 개인화된 컴퓨터를 원하게 됐다.

이는 극히 제한적인 범위내의 개인화를 의미했다.

이같은 제한적 개인화가 거대한 부품공급망 없이도 주문생산을 가능케 했다.

고가의 PC 부품은 가격등락이 크기 때문에 PC 제조업체의 이윤은 재고량에 따라 결정된다.

한 기업이 경쟁업체보다 부품 재고량을 줄인다면 수익이 그만큼 커진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델컴퓨터의 "이익 풀(profit pool)" 모델이다.

이같은 원리가 기타 산업분야에도 똑같이 적용될까.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매년 8백억달러 정도의 재고를 부담해야 한다.

이중 50억달러는 예상주문이다.

고비용 구조지만 델 방식을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유통업체들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또 미국 대부분의 주(州)에서는 지역 채널을 통하지 않는 자동차 판매는 불법이다.

시스코와 같은 대형 하이테크 업체도 델을 벤치마킹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델 방식을 채용하려는 업체들은 많지만 잘 되는 곳은 드물다.

델컴퓨터의 재고관리 모델이 너무나 독특하기 때문이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