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한 것을 비롯해 주요 기업들이 최악의 상황에도 견딜 수 있도록 위기관리의 강도를 점점 높여 가고 있다.

기업들은 세계 경기 침체가 국내 경제 시스템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 등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

일부에서 나타나는 미미한 경기호전 조짐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위험은 여전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항제철 등 국내 대기업들은 현금확보와 투자축소는 물론 조업단축 같은 비상수단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포항제철은 18일 경영환경이 악화됨에 따라 지난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위기때와 같은 비상경영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1.4분기중 매출부진으로 영업이익이 38%나 감소하자 올해 일반관리비를 30%까지 줄여 3천억원의 원가절감을 추진하기로 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 목표치를 당초보다 각각 2천억원과 2천3백80억원 낮춰 잡았다.

또 신규외화차입 4억달러를 취소했다.

경기침체의 여파로 미국으로부터 통상압력이 강화되고 있는데다 경쟁업체들의 공세도 거세져 경영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게 포철의 판단이다.

현대자동차는 회사채 만기에 대비해 20일 2천3백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 수천억원어치의 회사채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만기일까지는 몇 개월 여유가 있지만 미리 자금을 확보해 두기 위한 것.

향후 금융시장 여건이 급변할 가능성에 대비해 비싼 금융비용을 물고 회사채를 조기 발행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이와 함께 판매유통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과감한 구조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카렌스가 판매 부진을 겪자 이를 생산하는 화성 1,2공장을 대상으로 4월 한 달간 조업 단축을 하고 있다.

경기가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비상수단인 조업 축소를 단행한 것이다.

이는 지난 99년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해 6조원의 순이익을 올린 한국경제 ''캐시카우''인 삼성전자의 경우 다른 기업보다 더 위기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환율이 예상보다 급등해 올해 1조원 이상의 환차익 등 4조원대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원가를 20~30% 가량 줄이기 위해 각종 경비를 쥐어짜고 있다.

반도체 분야 투자도 1조2천억원 가량을 내년으로 미룰 예정이다.

삼성전기는 최근 이형도 부회장이 전사원에게 e메일을 보내 비상경영체제 돌입을 공표하고 각종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 회사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부문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투자계획도 재조정하기로 했다.

수출 비중이 높은 이 회사는 환율 상승으로 덕을 보겠지만 세계경기 침체 영향이 워낙 커 경영에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국내 기업뿐 아니라 필립스,시스코 등 해외 대기업들도 잇따라 대대적인 감원을 발표하는 등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미국발 세계경기 침체의 골이 그만큼 깊다는 방증이다.

최근 김대중 대통령이 경기 침체가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한 것도 악화된 기업경영 여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상무는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의 근본적인 경쟁력이 갖춰지지 않아 언제 위기가 재발할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섣부르게 경기 호전을 예상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택·이심기 기자 idnt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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