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처는 16일 재정 건전화에 중점을 두는 2001년 재정운용 방향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재정의 건전성을 중시하며 따라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추경을 편성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감세 논쟁에 이어 집권여당이 추경 편성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정부측 입장이어서 적지 않이 주목된다.

외환위기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가채무와 2003년 균형재정 달성을 위해서는 허리띠를 계속 졸라매야 한다는 것이 예산처의 논리다.

그러나 과연 지금이 재정 건전성만 따지고 있을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정부 재정은 경기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운영돼온 것이 사실이다.

신용카드 사용 급증에 따른 세원 노출과 징세행정 강화로 세계잉여금이 무려 4조4천억원이나 발생했다.

경기 급락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지출보다 세금으로 돈을 그만큼 더 빨아들여 결과적으로 경기 위축을 가속화했다는 얘기다.

이런 점은 당초 통합재정수지 면에서 GDP(국내총생산) 대비 2%의 적자재정을 운영할 계획이었으나 실제로는 GDP 대비 1%인 5조6천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올들어서는 재정자금의 조기 집행으로 상반기중에는 재정이 다소나마 경기 회복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반기에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게 돼 있다.

세수는 계획보다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재정 지출은 급격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재정 기조가 유지될 경우 연간으로는 재정이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정이 경기 회복을 돕지는 못할망정 발목을 잡아서는 안될 상황이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현재 우리 경제는 대외 경제여건의 급속한 악화로 ''4% 성장에 4% 물가상승''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 조짐마저 보일 정도로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다.

여기다가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로 초저금리 정책을 쓰고 있으나 얼어붙은 투자 및 소비심리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어 금리를 더 내리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더 내려봤자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면 정부의 유일한 경기대응 수단은 재정정책일 수밖에 없다.

물론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에는 찬반 양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올해 재정운영은 ''경기 부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경기 중립적''으로는 운영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추경편성 여부는 오는 6월까지 경제상황을 지켜본 다음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경제팀의 행보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경기회복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추경 편성 등 재정의 경기대응 노력을 조기에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

최경환 논설.전문위원 kgh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