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이 불가능한 부실기업을 가려내 상시퇴출시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부실발생을 사전에 제어할 시장메카니즘을 마련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는 주장이 업계에서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朴容晟)는 9일 [기업부실 예방을 위한 정책건의]를 통해 ''기업 내부 또는 외부에 부실경보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재무상태가 건전한 기업이라 하더라도 언제 어떻게 부실이 발생할지 모르게 된다''고 지적하고, ''부실징후를 조기에 포착하고 사전에 예방하는 메카니즘을 시장 내부에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진국의 경우처럼 <>재무흐름의 이상징후 조기포착을 위한 최고재무경영자(CFO)제도 도입 <>금융기관의 기업신용분석 및 대출심사능력 제고 <>공인회계사의 정확한 외부감사 등의 장치가 효율적으로 기능해야 기업의 부실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상의는 CFO제도를 도입해 최고경영자와 주주 그리고 채권금융기관이 기업의 현금흐름을 제때에 제대로 알게 하는 일이 중요하며, 오너나 CEO로부터 CFO의 독립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CFO제도 채택에 대한 유인장치로서 <>증권거래소에서 상장회사별 CFO 도입현황을 발표토록 하고 <>회사채 발행시 2개 이상의 신용평가회사로부터 신용등급을 평가받도록 한 복수평가제와 <>상반기중 추진예정인 분기보고서에 대한 공인회계사 검토의견 첨부의무 등을 면제해 줄 것을 건의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경영환경이 수시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의 현금흐름에 대한 철저한 분석 없이 신규사업을 벌이거나 영업전략을 짜는 것은 이제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하고, "선진국에서는 CFO가 CEO 다음으로 중요한 자리"라고 말했다.

또 "정보의 비대칭성문제 때문에 기업의 밖에서 기업의 안을 들여다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면서 "CFO제도가 잘만 도입되면 기업의 재무흐름을 투명하게 알고자 하는 주주와 채권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을 규제하기보다는 기업 스스로 선진경영관행을 채택하게 유인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대한상의는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기업견제능력을 좀더 강화해 줄 것을 주문했다.

기업의 시설투자나 사업프로젝트에 돈을 댈 때 현재와 같이 담보나 과거의 재무제표를 보고 대출하게 되면 사업 자체의 수익전망과 미래현금흐름 심사에 소홀할 수밖에 없고 기업부실문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에 대해서도 <>금융기관이 이같은 사업타당성 분석능력과 시스템을 갖추었는지를 금융감독과 평가에 중요항목으로 삼고 <>업종별로 전문적인 사업타당성 분석기관을 설립해 줄 것을 건의했다.

또한 최근 12월말 결산법인에 대해 공인회계사들이 의견거절을 많이 내고 있는 것은 외부감사기능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 긍정적 현상이라고 평가하고, 기업들도 부실이 알려지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시장신뢰를 잃을 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 이같은 주장을 내놓은 것은 4월 하순부터 상시퇴출시스템이 본격 작동됨에 따라 선진경영관행의 도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 기업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