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동남아 지역에 가방을 수출하고 있는 중견기업 A사.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한 외국업체로부터 9천5백만달러 어치의 가죽을 수입해 3개월 뒤 수입대금을 지불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올 들어 외환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여 환위험이 커졌지만 이를 관리하기 위한 어떤 수단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3개월 사이에 1백억원이 넘는 환차손을 입었다.

계약 당시 1천1백37원대에 머물렀던 환율이 대금 지불 시점에는 1천2백47원으로 1백10원 가량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 자금담당 관계자는 "환율이 급등하면서 환리스크 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회사 내에 이를 담당할 만한 전문인력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몇 년 전부터 사내 외환팀을 가동해 온 대기업 B사는 최근의 환율 요동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상당한 규모의 환차익을 거뒀다.

이 회사는 수출대금으로 들어온 달러화를 곧바로 수입대금을 결제하는 데 사용(매칭 또는 네팅)해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

또 수출입 거래에 수반되는 달러 입출금의 시차를 해소하기 위해 무역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선물환을 적절히 활용,환헤징을 하고 있다.

이같은 방법으로 이 회사는 몇 달 사이 40억원이 넘는 환차익을 봤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결산 상장기업의 외화 관련 순손실은 무려 3조9천5백79억원에 달했다.

99년에는 1조7천9백54억원의 순이익을 냈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내 업체들은 환위험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세워놓지 못하고 있다.

외환관리 전담부서를 갖고 있는 대기업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중소기업들은 환율 변동에 따른 환차손 등 리스크 대책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여건이 맞지 않아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달 말 2백개 국내 주요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환율리스크 관리실태에 대해 조사한 결과 무려 44.0%가 특별한 환리스크 회피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리스크 회피수단을 강구하고 있는 업체도 75.5%는 수출 계약기일을 앞당기거나 수입을 늦추는 등의 소극적인 내부기법을 활용하는 데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선물환거래(15%)나 금융선물거래(1.4%) 등을 활용하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했다.

환리스크 헤지(hedge) 정도도 매우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47.1%가 외환거래 규모의 25% 이하를 헤지한다고 응답했으며,25∼50%를 헤지하고 있는 업체는 20.6%에 그쳤다.

이는 환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업계의 인식과 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역협회 박진달 기획조사팀장은 "환위험을 적절히 피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위험 회피를 위한 최고경영자의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며 "외환관리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등 내부 외환관리 제도도 동시에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중은행 외화자금부 관계자는 "전담조직 신설이 어려운 중소기업은 거래은행 혹은 외부의 전문 환리스크 컨설팅 업체를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