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이 매우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도 국내 기업들의 대책은 거의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업체야 막대한 환차익이 기대되고 있지만 수입업체나 외화 부채가 많은 업체는 심각한 타격이 우려된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무대책이 상책이라는 식이다.

지호준 안동대 경제학부 교수가 코스닥 및 거래소 주요기업 1백21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환관리 전담부서를 갖춘 기업은 25.2%에 불과하다.

응답 업체의 93%가 환리스크 관리시스템 도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나 실제 구축한 기업은 14.2%에 불과했다.

실례로 매달 6억달러씩 원유를 수입하고 있는 SK의 한 관계자는 "달러 선물이나 옵션 등을 거의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수입 대금을 가능한 한 빨리 결제하는 방법으로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줄이는 정도"라는 설명이다.

LG정유 S-Oil 현대정유 등 다른 정유회사들도 별다른 환리스크 헤지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여서 막대한 환차손이 우려되고 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이들 정유 4사는 지난해 환율 상승에 따른 환차손을 극복하지 못해 사상 최대폭인 2천1백44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판매가 상승에 따라 정유사업 부문 매출이 지난 99년보다 무려 41.9%나 증가한 40조2천3백억원에 달했으나 순익은 되레 적자로 나타났다.

전자.전기부품 등 수출업체들은 다행히 환율이 오르고 있어 앉아서 환차익을 보고 있지만 환율 급변동에 대한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환율이 두 배 이상 올랐던 지난 97∼98년 1조원대에 이르는 환차손을 입었었다.

달러화로 차입한 외화 부채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해 발생한 손실이다.

삼성전자는 환차손을 2년에 걸쳐 떨어냈으나 현대전자는 지금까지도 당시에 입은 손실을 만회하지 못하고 있다.

수출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삼성전기와 LG이노텍도 역시 수입대금 결제를 늦추거나 앞당기는 소극적인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는 IMF 사태 때 기업들이 막대한 환차손을 입자 시장에 주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환차손 부분을 이연자산상각 비용으로 처리, 3∼5년간 나눠서 결산에 반영하도록 해줬다.

기업들에 환차손에 대한 마땅한 대책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그 해 결산을 다음 해로 미루는 비정상적인 방법을 허가해 주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외환을 담당하는 한 실무자는 "경영진 중에 환헤징과 투기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아 헤징을 하자고 건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귀띔했다.

또 "외환 관리를 섣불리 했다가 손해를 보면 IMF사태 때처럼 문책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책임지고 관리에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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