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이 뒷받침되지 않은 e비즈니스는 있을 수 없다. 섬유로 커온 코오롱이 어떻게 기존 제조업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재계 2세 오너들의 인터넷벤처투자를 주도해 왔던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은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 제조업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굴뚝 산업과 IT(정보기술)는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이라는게 이 회장의 지론이다.

한동안 우리는 벤처열풍에 빠져 "굴뚝 산업"으로 표현되는 제조업을 너무 무시했다.

최근 미국 나스닥시장에서 닷컴기업의 주가가 폭락하고 국내에서도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제조업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9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국가경쟁력 점검회의에서 "제조업체의 투자의욕 고취방안과 온라인화 투자 지원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한국을 먹여살리는 산업은 역시 제조업이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 산다.

수출의 효자종목은 역시 자동차 철강 조선 섬유 석유화학 가전 반도체 등 전통 제조업이다.

국내총생산(GDP)의 32.5%(99년 기준)를 차지하는 제조업은 수출외에 고용, 산업연관 효과 등에서 국부(國富)를 창출하는 경제의 주역임에 틀림없다.

자동차산업 하나만 봐도 IMF(국제통화기금)체제 이전에 고용인원은 22만명으로 전체 제조업의 7.46%에 이른바 있다.

외환위기의 수렁에 빠진 한국을 수출이란 생명줄로 연결해 구원한 구조대도 제조업이었다.

그래서 "제조업 르네상스"에 국운(國運)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박승록 연구위원은 "우리가 국제경쟁력을 가진 분야는 제조업"이라며 "전통 제조업에 IT 등 신기술을 접목시키는게 우리의 살 길"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은 우리나라가 1960년대초 대외지향적 공업화 전략을 채택한 이래 고도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한강 기적"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90년대 IT로 대표되는 "신경제"가 등장하면서 "구경제"로 분류된 전통 산업은 "종말론"에 시달렸다.

박우희 서울대 교수(경제학부)는 "미국의 신경제가 10년 이상 호황이니 우리도 이를 본떠 금융과 벤처만 일으키면 될 것이라는 "신경제 모방론"이나 "제조업 종말론"의 생각은 착각"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금융과 벤처로 국부를 창출할 수 있었고, 기축통화국으로서 만성적인 국제수지 역조를 금융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었다고 그는 분석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하나만으로도 세계경제권중 12위에 랭크되며, 거기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 등 핵심기술이 단기간에 제조업을 능가하는 부를 만들어 냈다는 것.

우리처럼 핵심역량 없이 "베끼기 생산"에 머물렀다가는 반짝 벤처경기의 허상만 있을 뿐이라고 박 교수는 말했다.

아직은 반도체 철강 자동차 조선 등 굴뚝 기간중공업이 우리의 목숨줄이라는 얘기다.

제조업에선 반도체나 철강은 물론 LCD 전자제품 하나만으로도 연 1조수천억원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다.

세계 최대의 무역흑자국인 일본의 주력 수출상품도 자동차 사무자동화기기 정밀기계 산업기계 등 제조업 품목들이다.

아무리 "지식기반경제" "디지털경제" 등 신용어가 풍미해도 제조업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경제란 모래성일 수 있다.

지식노동자와 지적자본도 제조업과 직접 연관돼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인식에서 구산업과 신산업을 조화시키는 "쌍두마차형" 산업발전론이 등장했다.

현대경제연구원 김용복 연구위원은 "우리가 세계적인 수준의 경쟁력과 인지도를 가진 반도체, 휴대폰, 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등 제조업 제품을 "월드 베스트"로 유지.발전시키는게 국가경쟁력 제고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제조업은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되면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부품.소재산업의 약화에 따른 고질적인 수입유발적 산업구조 <>기술인력 부족 <>자금난의 악순환 등에 시달리고 있다.

최악의 경우 "제조업 붕괴" 시나리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김석중 상무는 "단기적으로 자금과 우수인력을 공급하고 중장기적으로 기술기반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조업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