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에 사는 김정국(65)씨.

30년 다녔던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과 푼푼이 저축했던 돈을 합쳐 2억원으로 이자를 놓고 사는 그는 요즘 "죽을 맛"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은행 정기예금에 돈을 넣어 놓고 매달 3백만원 정도를 꼬박꼬박 받았다.

35평 아파트에서 부부가 그럭저럭 사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아파트 관리비도 못낼 판이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연 5%대로 떨어졌기 때문.

세금을 떼고 나면 그가 매달 손에 쥐는 이자는 80만원 남짓.

그걸론 도무지 생활이 되지 않는다.

지난 99년부터 금리가 하락하면서 이자소득이 야금야금 줄었지만 이젠 한계상황이다.

김 씨는 원금을 깨든지,아파트 평수를 줄이든지 결단을 내릴 작정이다.

<>원금 까먹는 이자소득 생활자=은행들이 잇따라 금리를 내리면서 별다른 소득 없이 예금이자로만 살던 노인들에겐 타격이 말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 은행창구엔 정기예금을 해약하러 오는 노인들이 부쩍 늘었다.

조흥은행 소공동지점의 창구직원은 "정기예금 이자만으론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이 원금을 헐어 쓰기 위해 정기예금을 해약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며 "별다른 대안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김성엽 재테크 팀장은 "원금의 일정액이 이자와 함께 자동 지급되는 예금상품을 찾는 고객이 많아졌다"며 "대부분 이자소득이 줄어 궁핍해진 노인층"이라고 전했다.

김 팀장은 그런 노인들에겐 "혹시 부동산이 있다면 가장 먼저 처분하고 그래도 안되면 장기계획을 세워 원금을 쪼개 쓰도록 유도한다"고 귀띔했다.

<>고금리 좇아 파이낸스까지=은행 이자가 워낙 싸지다 보니 예금자들은 연 1%포인트 미만의 금리 차이에도 신경을 곤두세운다.

일부 은행 고객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쳐주는 신용금고로 몰리고 있다.

현재 신용금고의 1년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 7.5~8%수준.

새마을금고나 신협 등을 찾는 사람도 있다.

다소 위험하더라도 한푼이라도 이자를 더 받는 게 중요하기 때문.

일부는 유사 금융회사의 문을 두드리다 낭패를 보기도 한다.

부산에 사는 이종훈(가명.54)씨는 작년말 연 20%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유혹에 빠져 D캐피털에 1억원을 맡겼다가 돈을 날렸다.

당국의 단속에 걸려 이 회사 사장이 구속되면서 이자는 커녕 원금도 찾을 수 없게 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저금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늘자 고금리를 미끼로 사기를 치려는 유사금융회사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줄이고 임대사업=예금이자 외의 수입을 위해 아파트 평수를 줄이고 임대사업에 나서는 사람도 많다.

지난 98년 대기업에서 명예퇴직한 최명재(51)씨는 최근 46평 아파트에서 28평으로 이사하고 대신 살던 집은 월세를 놓았다.

1억원 보증금에 월 1백만원씩 집세를 받는다.

은행 이자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짜낸 고육책이다.

최씨 같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은행에서 주택담보 대출 등을 받아 아파트 임대사업에 본격 나선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아파트 임대시장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차 메리트가 떨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할부로 집장만 늘어=젊은 직장인들 중엔 지금 같은 "저금리 찬스"에 집 장만을 하려는 사람도 있다.

장기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대신 원금과 이자를 매달 조금씩 갚아나가겠다는 것.

이자도 거의 없는 데 저축으로 돈을 모아 집을 사느니 아예 집을 먼저 사고 싼 이자를 물겠다는 계산인 셈이다.

일부 은행에선 최장 50년 만기에 변동금리로 연 7.6%(기업은행 3월23일 기준)에 주택자금을 현재 빌려주고 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