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한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금강산 관광사업을 통해 적대적인 남북관계를 완화하는데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특히 그의 의지로 지난 98년 11월 첫 출항한 금강산 관광선은 남북간 오랜 대립과 불신을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을 향한 이정표로 기록됐다.

당시 방한중이던 빌 클린턴 전 미대통령은 금강산 관광선의 출항 장면을 TV로 지켜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한.미공조 의지를 다졌다는 후문이다.

정 명예회장의 대북사업 의지는 89년 1월 그의 첫 방북으로 가시화됐다.

그는 당시 김일성 주석과 만나 현재 금강산 관광사업의 기초가 된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를 체결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의정서는 대결적 남북관계로 빛을 보지 못하다가 햇빛정책을 편 현 정부들어 "소떼 방북"으로 결실을 낳았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소 5백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북측 지역으로 넘어간 정 명예회장의 방북행에 대해서는 "역시 현대 왕회장"이라는 찬사를 낳기도 했다.

금강산 관광으로 물꼬가 트인 현대의 대북사업은 남북영농사업, 평양체육관 건립, 남북농구경기대회, 서해안 공단개발 사업 등으로 이어졌고 99년 10월 정 명예회장은 한 번 만나기도 힘든 김 위원장과 두번째 면담을 가졌다.

금강산 관광을 비롯한 이같은 현대의 대북사업은 단순히 일개 대기업의 사업을 떠나 남한 정부의 강력한 화해 의지를 보여준 결과물로 평가받기도 했다.

98년 8월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의혹으로 악화되던 국내외 여론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선이 첫 출항을 했고 99년 6월에는 서해교전 등으로 관광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관광객 신변보장협상"이 타결되면서 관광이 재개됐다.

물론 현대의 대북사업은 다소 무모하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관광대가를 지급하지 못하자 정부도 찬사를 보내던 데서 한 걸음 물러나 정경분리 원칙을 내세우며 현대 자체의 문제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통해 남북경제협력과 남북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큰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임가공이나 단순 교역에 머물던 남북경협이 투자를 중심으로 한 남북간의 본격적인 협력사업으로 성숙했고 금강산 관광을 통해 국민들의 대결적 대북감정을 다독이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또 북측도 금강산 관광사업을 통해 남측을 신뢰하고 국가재건의 파트너로 남측의 손을 잡기 시작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최근 "(정 명예회장) 그 사람은 강원도 통천이 고향이니까 북의 연고자가 아닙니까. 여하튼 그의 마음이 기특합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명예회장이 타계한 이후에도 현대호가 금강산 관광을 비롯해 대북사업을 계속 이어갈지 주목된다.

경제적 이익을 내기 힘들뿐 아니라 자금난으로 출혈을 감수할 여력도 없기 때문이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