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주영 회장의 삶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세상에 펼쳐 입증시켜 보이는 과정이었다.

그의 일생을 관통한 가장 큰 경영철학은 "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였다.

1970년대초 조선소부지 사진 한 장을 달랑 들고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영국계 은행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낙관주의였다.

조선 경험도,조선기술자도 없는 현대에 차관을 빌려줄 수 없다는 그들을 정 회장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가능하냐고 묻지 말라"며 설득했다.

정주영 회장은 경영에서 신용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돈을 모아서 돈만으로 이만큼 기업을 이루려 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현대의 성공비결을 신용에서 찾았다.

상품에서의 신뢰,모든 금융거래에서의 신뢰,공급계약에서의 신뢰,공기 약속 이행에서의 신뢰,공사의 질에서의 신뢰 등 신뢰의 총합으로 오늘날의 현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그가 쌀가게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물려받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믿을만한 청년"이라는 신용 하나로 가능했다.

그는 깨끗한 기업,부패없는 나라를 꿈꿔왔다.

가장 큰 기업보다 가장 깨끗한 기업이라는 평가가 붙여지기를 원했다.

수많은 건설현장을 유지하면서 부패가 끼어들면 부실공사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직원들을 일깨워왔다.

정 회장은 생시에 "권력으로부터 박해받은 적은 있지만 한 번도 권력을 끼고 성장한 적은 없었다"며 부패가 없는 나라 싱가포르를 모범이라고 항상 강조해왔다.

현대그룹을 일구면서 권력과의 긴장관계가 끊이지 않았지만 정 회장은 "국가의 이익이 기업의 이익보다 먼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기업이익을 앞세운 기업인은 절대로 대성할 수 없다는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기업을 국가살림에 쓰이는 세금을 창출하고 국민들에게 풍요로운 생활의 터전을 제공하는 집합체라고 정의했다.

특히 대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전체 종업원과 사회,국가의 것이고 경영자는 청지기일뿐이라고 믿었다.

그가 자신을 "부유한 노동자"라거나 "기업은 커질수록 좋다"고 말한 것도 이때문이었다.

정 회장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신봉했다.

그렇지만 천박한 자본주의,돈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황금만능 사회는 위험하다고 보았다.

"돈을 벌어 그 이윤으로 가정을 안정시키고 나아가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면서 인간답게 사는 것"이 그가 생각한 자본주의의 정신이었다.

이때문에 돈만을 목적으로 하는 고리대금이나 은행이자만을 받아서 재산을 불리는 것은 진정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악성자본주의라고 치부했다.

정 회장은 또 재물만이 부라고 보지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한 사람은 부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