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하구 신평공단내 성광벤드 공장 앞마당에는 용접용 관이음쇠 제품을 실어나르는 트럭과 기게차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직원들은 대형 조선소와 건설회사, 기계 화학 발전소 등으로 생산품을 실어 보내기 위해 일하느라 쉴 틈이 없다.

지속적인 경기 침체를 기록하고 있는 부산 경제라는 현실은 성광벤드에는 남의 얘기다.

이처럼 성광벤드가 불경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술력의 우수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끊임없는 연구와 기술혁신, 신제품 개발로 실용신안 등록을 비롯한 발명특허 등 10여건의 기술인정서를 보유해 대외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탄탄한 노사 신뢰도 성장의 다른 축이다.

1975년 노조가 결성된 이후 단 한건의 노사분규도 없었다.

이같은 기록은 신뢰와 양보 속에 노사가 성장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노력하면 보답하는 회사로 인식되자 직원의 이직률도 줄어들어 10년이상된 직원이 총 3백20명중 70% 정도를 차지할 정도다.

하지만 성광벤드의 성공 뒤엔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1963년 수도용 부품 제조업체로 문을 연 이 회사가 71년부터 벤드 개발을 시작하려하니 격려보다는 무모한 일을 한다며 주위의 만류가 심했다.

심지어 당시만 해도 나사를 사용해 관 자체를 구부려 만드는 이음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쓸데없는 개발에 돈을 투자해 1년내 망할 것이라는 비아냥도 쏟아졌다.

그러나 안갑원(65) 사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20여명에 불과한 직원들도 이 길만이 살길이라는 의지로 똘똘 뭉쳤다.

벤드 생산의 핵심은 금형을 만드는데 있다고 판단하고 일본 등 선진국 카탈로그를 참고해 금형 제작에 집중했다.

그 결과 3여년만에 금형 개발에 성공했다.

용접용 관이음쇠 밴드 성형방법에 대한 특허도 취득했다.

신기술을 갖춘 첨단 회사로 나서는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성공의 기쁨도 잠시, 수요처가 없었다.

안 사장은 매일 업체들을 찾아다니며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고 책임자들을 설득해 나갔다.

마침내 현대중공업과 남해화학 등이 안 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회사들이 납품을 허용하면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때마침 조선경기 호황과 화학플랜드 건설 붐이 불면서 벤드를 필요로 하는 분야가 급성장해 탄탄한 수익 기반을 구축했다.

제품의 우수성이 해외에 알려지면서 지난 82년 이란의 가스라인 공사에 수출, 해외시장의 물꼬를 텄다.

이후 미국 일본시장 등도 개척하는 등 수출시장이 계속 늘고 있다.

관이음쇠 생산업체로서 입지를 국내외적으로 완전 구축한 것이다.

이에 힘입어 성광벤드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3억원(매출 6백15억원)을 기록, 전년의 16억원(5백37억원)보다 43.8% 증가했다.

내친 김에 올해 목표를 당기순이익 40억원에 매출 6백50억원으로 설정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 오는 4월말 녹산공단에 1천9백평 규모의 스테인레스 자동화공장을 설립, 20% 이상의 원가를 절감한 뒤 유럽시장에 본격 뛰어들 계획이다.

안 사장은 "기술혁신 없이는 국제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올해를 제2의 도약 원년으로 삼아 세계 최고의 관이음쇠 제조업체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