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지식재산권 공세가 심상치 않게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그동안 미국의 주시대상이 돼왔던 국가들이 지재권 보호조치 및 실질적 법집행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최근 한국을 비롯 일부 국가에서 정부가 앞장서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의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와 관련해 독과점적 영향력을 가진 선진국 소프트웨어업체들이 후발국에서 과연 어떤 전략을 펼칠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최근 주목할만한 일이 발생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한국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 등 미국 주요 소프트업체들이 판매 제품의 가격을 대폭 인상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마이크로소프트측은 한국 정부의 불법복제 단속과는 무관하며 단지 미국보다 낮은 가격을 정상화한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지가 우선 의문이고,설사 무관하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이런 전략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들에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과연 무관할까=미국에서보다도 낮은 가격을 정상화시켰다는 주장은 몇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가격에 비해 한국에서의 소비자 판매가격이 반드시 낮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불법복제율과 가격의 관계도 그렇다.

미국 업체들이 주장하듯 불법복제율이 50%가 넘는다는 한국에서 미국에 비해 낮은 가격이 책정돼 왔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물론 정품사용을 권장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가격을 낮게 책정했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충분한 설명이 못된다.

그렇게 보기에는 국내판매 가격이 결코 낮은게 아니었고 또 그런 논리였다면 불법복제 단속이 강화되는 시점에서 굳이 가격인상을 시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스페셜301조의 활용,무역관련 지재권 협정(TRIPs)의 이행 등 미국 정부의 지재권공세 뒤에는 항상 미국 업체들의 입김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번 가격인상을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보기 힘든 측면도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불법복제 단속을 계기로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독과점적 영향력이 후발국에서 가시화되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유리한 전략일까=불법복제 단속과 관계가 있든 없든 가격인상이 단기적으로 보면 미국의 소프트웨어 업계에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들에게 근본적으로 유리한 전략이 될지는 몇가지 측면에서 의문이 남는다.

우선 미국 업체들은 그동안 줄기차게 상대국 정부의 불법복제 단속의 실효성 문제를 지적해 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불법복제를 줄이고 시장확대를 기대하기엔 소프트웨어 가격이 너무 비싸다.

소프트웨어 후발국에서는 독과점으로 형성된 높은 가격이 어떤 측면에선 단속이 미흡한 것보다 더 근본적인 불법복제 유발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조차 불법복제율이 20%를 웃돌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특히 그렇다.

또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독과점적 가격전략은 소프트웨어 후발국들이 경쟁정책 차원에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후발국들이 단합해 경쟁정책 차원에서 현재 TRIPs의 강력한 지재권 보호문제를 한번 검토해 보자는 목소리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독점적 지위에 있는 기존 소프트웨어 업체에 대해 여전히 시장에서 하나의 경쟁축을 형성하고 있는 오픈소스의 리눅스가 후발국이 뭉치면서 결정적으로 힘을 얻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비싼 가격으로 인해 사용자들의 폐쇄적인 마인드가 깨진다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널리 확산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은 소프트웨어 독과점 업체들에 결정적인 부메랑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소프트웨어 후발국의 정부나 사용자들이 이런 측면에서 협상의 레버리지(leverage)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감안하는게 현명하지 않을까.

안현실 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