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증시의 침체가 심화되면서 최근 각 나라는 시장을 되살리고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금리인하보다 세금감면책에 기대를 거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이 가장 앞서 이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당초 예상보다 증시와 경제상황이 더 악화됨에 따라 세금감면책을 앞당겨 추진하고 있다.

재정의 여유가 없는 일본과 유로랜드도 세금감면책을 구상 중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주 열린 경제동향설명회에서 진념 부총리가 세금감면을 시사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논란을 빚고 있다.

최근에 세계 각국이 일제히 세금감면책을 구상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세계 경기순환상의 위치와 경제구조가 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세계경기는 정점(頂点)을 지나 침체국면에 놓여 있다.

경제 주체들의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금리를 내리더라도 총수요가 늘어나지 않는다.

세계 각국의 경제구조를 보더라도 총수요 항목별 GDP 기여도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이미 60%를 넘고 있다.

결국 증시와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민간소비 확대가 관건이다.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종전처럼 정부가 인위적으로 지출을 늘리면 오히려 민간소비가 줄어드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가 나타나는 것이 최근 세계경제구조의 특징이란 점이다.

따라서 세금감면책을 통해 국민들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면 민간소비가 늘어나 경기회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동시에 개인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곧바로 증시참여자들의 투자심리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체감경기를 개선시키는 이중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세계 각국이 세금감면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재정여건이 받쳐줄 수 있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런 면에서 미국은 가장 좋은 여건을 갖춘 나라다.

미국은 10년간 호황과 클린턴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개선책에 힘입어 매 회계연도마다 2천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할 만큼 재정건전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반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세금감면책이 절실한 일본은 93년 하반기 이후 17차례에 걸쳐 10조엔 이상을 투입하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재정적자가 GDP의 11%,국가채무는 GDP의 1백32%에 이르고 있다.

유로랜드는 90년대 초에 비해 많이 개선됐으나 여전히 재정수지가 적자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일단 외형상으로 본다면 세금감면책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은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통합재정수지가 GDP의 1% 정도 흑자를 낸 상태고 신용카드 사용이 활성화되면서 과표가 갈수록 투명해지고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간접세에 대한 의존비율이 높아 재정수지가 경기상황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대표적인 국가라는 점이다.

현재 우리 경기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재정수지가 또다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감면책을 추진할 경우 우리도 일본처럼 정책무력화 단계에 처할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요즘은 현실을 외면한 말과 행동을 앞세우는 정책당국자보다는 말은 될 수 있는 대로 아끼고 행동을 신중하게 하는 정책실무자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제각료처럼 각종 모임에서 강연을 많이 하는 나라도 없다는 어느 외신의 혹평을 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