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티은행,JP모건,BOA 등 세계 유수은행들의 연차보고서는 한결같이 "친애하는 주주여러분(Dear Shareholders)"이란 문구로 시작한다.

이어 주당 얼마의 순익을 냈고 전년보다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구체적인 수치로 명시한다.

전세계 고객 1억명을 가진 시티은행의 최우선 경영모토가 "고객우선"이 아니라 "주주이익"이다.

시티은행 한국지점 하영구 대표는 "경영을 잘해서 주가를 올려 주주이익에 기여하는게 스톡옵션을 받는 경영진이나 종업원,고객,지역사회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티은행의 대주주는 지분율이 5%를 넘지 않을 만큼 철저히 지분이 분산돼 있다.

미국내 유수은행중 대주주 지분율이 10%를 웃도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9년기준 미국은행들의 평균 대주주 지분율은 4.8%,일본은 5.0%이다.

이는 은행을 소유한다고 주장할 만한 주인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책임경영이 미흡해 금융사고가 빈발하거나 부실채권으로 급작스레 은행이 문닫는 경우도 거의 없다.

결국 대주주가 있고 없음이 은행의 경쟁력과는 거의 무관하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선진국일수록 산업자본의 은행지배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은행은 다른 업종과 달리 돈과 정보가 모이는 곳이어서 산업자본에 배타적 소유권을 허용할 경우 정보독점 등의 폐해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은 은행 소유한도가 25%(10%이상은 승인)이지만 비금융기업의 경영개입이 불가능하다.

지난해 통과된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은 비금융기업이 저축대부조합(지역은행)을 설립 또는 인수해 금융업에 진출하는 것까지 금지시켰다.

유럽국가들은 대개 주주의 적격성(Fit & Proper)에 대한 사전심사를 통해 산업자본의 은행지배를 규제하고 있다.

은행 주식소유에 대해 명시적인 규제가 없는 영국은 중앙은행(영란은행)이 창구지도를 통해 진입을 제한하며 은행을 소유한 비금융기업에 대해 연결재무제표로 철저히 감시한다.

일본도 법적제한이 없어도 기업이 은행을 지배할 만큼 지분을 확보하는 경우는 없다.

기업과 은행이 협조차원에서 상호 주식보유가 많지만 서로 지배할 수 없게끔 관행화돼 있다.

다만 부실은행 정리과정에서 리스회사인 오릭스가 야마이치신탁은행을 인수했다.

지난해엔 1년간 논란끝에 편의점업체인 이토이오카그룹이 지난해 ATM(현금자동입출기)를 이용한 제한적인 은행업 진출을 허가받은 사례가 있다.

선진국에선 설사 비금융기업이 은행 대주주인 경우라도 은행돈을 쓰는데 별다른 혜택은 없다.

소유는 하더라도 절대 지배할 수 없게끔 감독이나 관행이 굳어있다.

국내에선 은행소유한도(4%)에다 대주주여신한도까지 규제하는데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고 싶어한다면 아직도 돈줄로 활용할 만한 헛점이 있다는 얘기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