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도는 LG캐피탈로서는 최고의 해였다.

신용카드 업계에서 시장점유율 4~5위권을 헤매던 회사가 2위까지 비약적인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순이익도 전년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어난 약 4천억원을 달성했다.

지난해 LG캐피탈 전 직원들은 본봉의 평균 8백%에 이르는 성과급을 손에 쥐었다.

같은 기간 신용카드 시장 규모가 약 두배 커진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례적인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경쟁사들도 깜짝 놀랄 정도의 실적이었다.

최근 BC카드가 각 은행별 독자 사업 추진으로 전략을 수정해 사실상 단일 기업으로는 LG캐피탈이 업계 1위라는데 이견이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LG캐피탈의 "비상(飛翔)"이 가능했던 것은 이헌출(李憲出.53) 사장의 과감한 결단과 힘있는 추진력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사장이 LG캐피탈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97년 1월 LG그룹 회장실 부사장에서 LG캐피탈(당시 LG신용카드)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였다.

"취임하고 보니 패배주의에 젖은 조직 문화가 한 눈에 들어오더군요. 실적이 업계 바닥권인데도 심각하게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년후 사장에 오른 그는 조직문화 혁신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그가 꺼내든 비책은 전 직원들에게 "우리도 1등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톱(Top) 2000" 운동이다.

"국내 경쟁사와 해외 카드사들과의 비교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를 조직원들에게 분명히 인식시키고 우리도 노력만 하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대신 성과에 따른 보상도 약속했지요"

각 부서마다 과장급 이하의 젊은 사원들을 중심으로 소위원회를 만들고 각각 혁신 프로젝트를 부여해 정기적으로 평가하는 체제를 가동했다.

우수 사원들에게는 포상도 빠트리지 않았다.

사원들에게 원가 개념을 확실히 주입시키기 위해 상품별 원가 정보가 적혀 있는 원가수첩을 나눠 주고 틈틈이 읽게 했다.

변화는 신상품의 대히트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99년 8월 선보인 여성전용 카드인 "LG레이디카드"가 여성고객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것이다.

한달 뒤 20~30대 남성을 위한 "LG2030카드"까지 가세해 신용카드 시장에서 LG캐피탈의 위력이 빛을 발했다.

LG캐피탈은 두 카드로 1년6개월만에 5백만명의 신규 회원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9월에는 비자 인터내셔날로부터 국내 카드사로는 처음으로 최우수상품상을 받기도 했다.

LG캐피탈이 특정 고객을 위한 특화된 카드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차별화 마케팅"에 착안한 이 사장의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미국에서 열린 국제카드업협회 회의에서 만난 각국의 카드사 사장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중산층을 집중 공략하는 마케팅으로 성공한 미국의 프로비디언(Providian)사의 사례에서 LG캐피탈의 생존 전략을 얻었지요. 시골의 60대 농부와 도시의 20대 청년이 같은 신용카드를 쓰게 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LG레이디카드"는 대리급 이하 젊은 여직원들이, "LG2030카드"는 20~30대의 남자 직원들끼리 팀을 짜서 개발해 낸 상품이다.

이후 각 신용카드사들이 앞다퉈 여성전용 카드를 내놓았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느덧 선두 자리를 지켜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외환카드 인수를 통한 외국계 카드사의 진출과 신규 카드사의 신설 가능성 등으로 더욱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LG캐피탈은 "톱 2000" 운동을 중장기 비전으로 연장시킨 "톱 2005"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를 위해 개인 소비금융사업을 핵심 승부사업으로 선정했다.

신용판매와 현금서비스의 기본 위에 할부금융과 소비자금융, 카드론 대출 업무 등을 균형있게 키워 종합여신 서비스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사장은 "신용카드 사업은 거래의 투명성을 통해 건전한 경제체제를 실현하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면서 "사명감을 갖고 전 직원과 함께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