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불량에 걸린데다 배설도 제대로 못하는 환자"

진입.퇴출 시스템이 마비된 한국금융의 현주소다.

IMF 체제 이후 금융기관들의 무더기 퇴출은 선심성 승인이 낳은 예고된 결과였다.

부실 금융기관의 퇴출 시스템도 "부실"해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윤재(54)씨.

지난해말 20여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받은 퇴직금 9천만원을 예치했던 OO신용금고가 영업정지를 당했다.

그는 그날로 다른 신용금고에 넣어뒀던 돈까지 모두 빼냈다.

지난해말 20개 금고가 영업정지당하고 수많은 금고가 유동성 위기에 내몰렸던 데엔 이처럼 정교하지 못한 퇴출시스템이 한몫 했다.

금고에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지면 예금보험공사가 5백만∼2천만원까지만 대신 지급해줄 뿐 그 이상의 금액은 자산 및 부채 실사가 끝난 뒤에야 준다.

고객 입장에서는 자신의 돈이 몇달간 예금에 묶이게 된다.

또 청산될 경우 약정이자보다 훨씬 낮은 시중은행 평균금리를 받는다는 점에서 예금인출 행렬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은 구조다.

시스템이 이렇다보니 결국 ''퇴출되지 않아도 될'' 금고까지 유동성 위기로 인해 청산의 길을 걷게 된다.

금융연구원 김병덕 위원은 "미국의 경우 금융기관에 영업정지 조치를 내리는 동시에 예금액 전부를 대지급해 준다"며 "미리 파악해 놓은 현황 자료를 토대로 우선 대지급을 시행하고 정확한 자산 및 부채 실사는 이후로 미루기 때문에 예금자가 피해 볼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부실한 퇴출도 문제이지만 무분별한 진입 시스템은 더 큰 문제다.

지난 92년 근로자 은행을 표방하며 출범한 평화은행은 독자생존에 실패함으로써 올 1분기에 정부 주도의 금융지주회사로 편입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시절 지역 경제 및 중소기업 육성과 근로자 복지 등 그럴 듯한 명분으로 설립됐던 동화 대동 동남 평화은행 등 4개 은행이 모두 간판을 내리는 셈이다.

이들 은행은 표를 의식해 당시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내놓은 선거 공약의 산물이었다.

경제 논리를 무시한 채 금융기관 설립 인가를 남발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종금사 무더기 인.허가가 결국은 환란(換亂)의 도화선이 됐다.

김영삼 정부 출범 후 무려 24개 투자금융회사들이 종금사로 전환됐다.

좁은 국내시장에 30개 종금사가 북적거리게 되면서 과당경쟁이 치열해지고 수익성이 떨어지자 종금사들은 앞다퉈 해외로 진출했다.

싼 이자를 주고 해외 단기자금을 얻어다 수익성이 좋은 국내 장기대출로 운용하는 모험이 계속됐다.

해외에서 고위험 펀드를 통한 투기도 서슴치 않았다.

무분별한 인.허가는 결국 외환위기로 연결됐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