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분식회계를 털어내도록 유도키로 한 것은 회계장부상의 과거청산을 통해 투명회계를 앞당기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이른바 "회계장부 클린화"를 단행하겠다는 의지다.

지금까지 부풀려 왔던 기업의 이익이 전기오류수정 손실로 반영되면 일시적으로 주식시장과 자금시장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

기업이 전기오류수정을 거부할 경우는 회계법인이 "부적정" 또는 "의견거절"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따라 회계법인의 엄격한 외부감사 과정에서 분식회계 부분을 털어내려는 회계법인과 그대로 안고 가려는 기업간의 마찰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주총을 앞두고 제기되고 있는 회계대란 우려를 회계장부 클린화로 정면돌파하겠다는 것이 금감원의 의지다.

<>회계장부 클린화 추진배경=정부는 IMF이후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하는 등 회계제도를 개선해왔다.

분식회계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거의 분식회계 부분에 대한 처리방안은 없었다.

기업이 한번 분식회계를 하면 재무제표상에 부풀려진 재고자산이나 매출액 이익 등이 해를 넘겨도 계속 남아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분식회계로 한번 부풀려진 이익은 해를 넘겨도 이익잉여금으로 남아 있게 된다"며 "잘못된 재무제표를 바로잡기 위해 회계장부 클린화를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대우 계열사 분식회계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와 동아건설의 분식회계 문제가 불거진 것도 회계장부 클린화의 배경이다.

대우 계열사처럼 해를 거듭하면서 계속된 분식회계로 수십조원의 자산이 부풀려지는 "제2의 대우사태"가 발생할 지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돌았다.

이에 따라 과거 분식회계 부분에 대한 청산이 급선무로 등장했다.

금감원이 앞으로 2~3년 동안 전기오류수정을 통해 분식회계를 털어낸 기업과 회계법인의 과거 분식회계에 대해 처벌을 완화하기로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현행 법령에는 금감원의 고발에 의해 분식회계와 부실감사가 밝혀지면 해당 기업 임직원과 공인회계사는 3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부적정 의견거절 급증할 듯=금감원은 대부분 기업들이 2000사업연도 재무제표에 분식회계부분을 모두 전기오류수정을 통해 털어낼 것으로 보고 있다.

분식회계의 클린화에 대해 강제성은 없지만 대우사태를 계기로 회계법인들이 기업이 작성한 재무제표를 그 어느때보다 깐깐하게 감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식회계가 드러난 기업은 회계법인의 "적정의견"을 받아내기 위해 전기오류 수정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부풀려진 매출액이나 이익 재고자산을 해당 계정과목에서 빼는 전기오류수정작업을 거쳐야 회계법인은 "적정"의견을 낸다.

기업과 회계법인 사이에 감사의견을 둘러싼 마찰도 예상된다.

부적정 또는 의견거절을 받아 대출중단 주가하락 등의 위기에 놓일 기업도 상당수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5개년동안 부적정 또는 의견거절을 받은 기업의 숫자가 늘고 있다"며 "올해에는 12월말 결산 상장기업 가운데 약 10% 정도는 부적정 또는 의견거절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12월 결산법인 가운데 상당수의 기업은 회계법인의 적정의견을 받아내지 못해 주총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의 파장=금감원의 최근 조사에서 상장회사의 3분의 1 가량이 분식회계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는 등 "장부꾸미기"는 일반화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대부분 기업이 과거 분식회계 부분을 전기오류수정 손실로 처리한다면 당장 상장회사의 지난해 실적이 예상보다 크게 악화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주가가 하락하고 자금시장도 불안해 질 수 있다.

상장회사의 경우 2년연속 부적정 또는 의견거절을 받으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코스닥기업의 경우 아예 등록폐지가 돼 사실상 도산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기업은 회계법인으로부터 "한정"의견만 받아도 신용평가등급이 내려가는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

회사가 작성한 재무제표를 못믿겠다는 "부적정 의견"과 회사가 자료제출을 거부해 재무제표의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의견거절"을 받으면 사실상 기업의 자금줄은 막히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회계장부를 클린화하지 않으면 투명회계의 길은 더욱 멀어진다는 것이 금감원의 생각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회계장부 클린화로 인해 적지 않은 부작용도 예상되지만 투명회계를 앞당겨 기업가치가 적정하게 시장에서 평가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명수 기자 m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