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이 김각중 회장의 추대회의 불참에도 불구하고 김각중 현 회장의 유임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한국재계의 미묘한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준 것이다.

우선 이건희 삼성 회장,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 등 "오너" 총수들이 한결같이 고사하는 바람에 김 회장의 유임 외에는 다른 대안을 찾기가 힘들었다.

총수들은 얼마전 진념 재경부 장관의 "전경련은 대기업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발언 등 대기업 그룹에 대한 외부의 곱지 않은 시각을 의식한 나머지 "오로지 경영에만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손길승 SK 회장,유상부 포철 회장 등이 거명됐다.

하지만 이들 역시 "오너가 회장을 맡아온 전경련의 전통" 등을 의식해서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다.

이런 연유에서 "김 회장 유임카드"가 굳어졌다.

김각중 현회장이 전임 김우중 회장이 대우그룹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사태로 물러난 99년 11월 이후 1년3개월간 당초 기대 이상으로 회장직을 무리없이 수행해온 점도 "유임"으로 가닥을 잡은 요인으로 작용했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회의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각중 회장이 불참했으나 참석자들이 박수로 추대를 결정할 만큼 회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전했다.

그는 "김각중 회장이 회장직을 계속 고사하더라도 회장단 및 고문단이 전경련의 아름다운 전통에 따라 간곡히 추대하면 김 회장이 수락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 밤 김각중 회장의 서울 성북동 댁을 방문해 추대사실을 설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손 부회장은 "앞으로 김 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선출되면 재계가 전경련 위원회를 활성화하는 등 김 회장을 일심동체로 보좌해 경제현안을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그동안 김 회장이 전임 회장의 잔여 임기만을 채우는 과도기였으나 앞으로는 정식 임기라는 점을 감안해 차기 회장을 적극 돕자는 반성과 다짐의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고 전했다.

손 부회장은 "전경련 회장 선출을 놓고 정부측과 조율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차기 회장 선출의 실무를 책임진 손병두 부회장은 연초부터 재계총수들을 개별 접촉했지만 ''적임자는 있으나 자임자는 없는'' 상황에서 차기 회장을 고르느라 우여곡절을 겪었다.

차기 회장으로 거론된 인사들이 모두 사양한데다 이날 추대된 김각중 회장도 "절대로 못한다"고 말할 정도로 고사해 재계가 애를 먹었다.

김 회장은 이날 회의에 참석키로 돼 있었으나 자신이 추대될 것을 미리 알고 회의 시작 1시간 전에 손 부회장에 전화를 걸어 "몸이 피곤해 회의에 못나가겠다"며 고사의지를 표명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