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 개발을 놓고 경쟁 기업들과 늘 숨막히는 싸움을 벌여야 하는 제조업체들의 입장에서 연구 개발 관련 정보는 그야말로 "극비중의 극비"다.

행여 새나가기라도 하면 그동안 쌓아 놓은 공든 탑이 무너지고 경쟁사들에 역이용 당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하지만 자동차와 이륜차메이커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혼다는 이같은 상식을 보기좋게 뒤엎어 버린 결단을 하나 내렸다.

그리고 주위의 예상과 달리 대성공을 거두며 보안유지에 매달리는 것만이 기업경영에서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혼다가 반(反)상식의 오픈 마인드로 경쟁 기업들을 놀라게 한 것은 지난해 9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오토바이 신모델 FTR의 개발과정에서다.

혼다는 고객들이 자신의 기호에 맞춰 신모델 오토바이의 장식과 외관을 바꿀 수 있도록 완제품 판매와 동시에 옵션부품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이 회사는 시제품 제작단계에 있는 모델을 사외의 부품업체들에 빌려 주었다.

앞으로 판매될 오토바이를 부품업체들이 직접 운전하거나 면밀히 살펴 본 후 옵션 부품 개발에 필요한 아이디어나 단서를 얻으라는 취지에서였다.

시제품은 협력업체 뿐 아니라 평소 아무 관계도 없는 부품업체 일지라도 희망하는 회사에는 모두 대여됐다.

오토바이를 실제로 탈 고객 입장에서 고객이 원하는 부품이 무엇인가를 하나라도 더 알아내기 위한 의도였다.

개발 정보를 지켜 달라는 혼다의 주문이 뒤따랐지만 기밀이 누설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상태였다.

혼다는 안전성과 소음기준 등 메이커가 책임을 지는 부분은 혼다의 표준 부품을 채용하지만 나머지는 부품업체들이 마음껏 변형시켜 보라고 주문했다.

부품업체들은 의아해 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와 제품으로 혼다에 보답했다.

혼다는 6개 부품업체를 선택, 이들이 만든 모두 2백94종의 옵션 부품을 채택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선택 폭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었다.

시장의 반응은 놀라웠다.

연간 3천5백대만 팔아도 히트상품으로 꼽히는 오토바이 시장에서 FTR은 발매후 단 3개월만에 무려 9천대가 팔려 나간데 이어 지금도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혼다측은 이같은 발상의 배경과 관련, 사내 각 부서의 벽을 허물고 설치한 "소프트위원회"의 덕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이토 도시오 이륜차사업 부본부장을 축으로 연구소, 영업, 안전,홍보 등의 실무자들이 모여 만든 이 위원회는 소비자들이 진짜로 원하는 제품을 만들자며 난상토론을 밥먹듯 벌였다.

토론 과정에서 직급과 업무를 떠나 오로지 소비자만 생각했다는 것이 혼다의 고백이다.

사이토 부본부장은 "지금까지는 어떻게 팔 것이냐를 생각했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그는"개발 전부터 발매 후의 판촉활동과 소비자 접근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경쟁업체들은 혼다의 성공이 마케팅 조사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인데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내일의 소비자 심리를 읽으려 한데 대한 보답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이토 부본부장은 "현재의 조사결과도 제품이 나오는 시점에서는 이미 낡은 것이 되버린다"며"미래의 소비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륜차 시장에서 세계 톱을 달리는 혼다의 시제품 공개는 이번이 첫 번째였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하는 것"이라며 사내에서는 어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