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 < 이노디자인/ DesignAtoZ.com 대표 >

5년 전 전동공구 제조업체인 계양전기의 이상익 대표로부터 연락을 받았었다.

그동안 품질개선에 주력한 결과 국내외 시장에서 탄탄한 기반을 쌓았지만 세계 유명 제품들과 본격적으로 경쟁하기 위해서는 품질만으로는 어렵다는 하소연이었다.

사정이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경기도 안산에 있는 계양전기를 찾았다.

본사는 공장 연구소 등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는데 특히 중앙연구소는 중견기업 수준 이상의 매우 건실한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문제는 회의실에 들어설 때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임원들이 점퍼 스타일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외국 생활에 익숙한 필자에게는 이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일사분란한 그 모습을 보며 새로움과 변화를 추구하기에는 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실제 사정이 그랬다.

일본 회사의 제품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제품들이 절반이 넘었다.

자체 디자인은 이런저런 이유로 개발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제품의 이미지가 일관되지 않았음은 물론 제품을 보고 전혀 기업의 이미지를 연결시킬 수가 없었다.

로고 디자인도 세계 시장은 물론 국내 시장의 경향에도 뒤쳐지는 것이었다.

품질과 기술은 세계 수준이었는데 유독 디자인만은 국내 수준에도 못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디자인 때문에 세계로 향한 최고 경영자의 꿈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서슴지 않고 임원들을 향해 제품 디자인의 정체성은 물론 회사 전체의 CI(Corporate Identity)를 바꿔 보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일순간 회의실은 숨이 멎는 듯 했고 이어서 마치 청문회에 불려온 피의자처럼 나는 2시간여에 걸쳐 쏟아지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제품 디자인 전문회사가 CI를 정말로 할 수 있느냐" "지금까지 아무 탈없이 사용하고 있는 심볼마크를 굳이 바꾸자는 이유가 뭐냐" "그 돈이면 차라리 대리점 마진을 높여 주던가 사은행사를 벌이는게 낫다" 등의 불안과 불만이 섞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런 디자인 청문회(?)를 겪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수년이 지난 최근 우연히 한 신문기사를 보고 필자는 감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계양전기의 CI가 완료되어 기업의 이미지가 일신되었고 독자적이고도 새로운 이미지의 제품군을 확보해 중국과 유럽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다는 것.

결국 디자인 혁신은 그 회사의 매출을 3배 이상 증대시키는데 기여를 했다는 신문기사였다.

이제야 첫번째 회의에서 쏟아졌던 불안감 어린 질문에 대한 진정한 대답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알지 못하면 어려운 것이고 볼 수 없으면 불안한 법이다.

기업도 마찬가지.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안을 찾기 어렵다.

미래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변화를 두려워하게 마련이다.

어느 기업을 막론하고 한국 기업은 이때까지 눈에 보이는 품질 등을 통해 경쟁력을 추구해 왔다.

디자인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도 얼마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에 관심을 기울이기란 사실 힘들다.

하지만 품질과 기술이 중요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차별화된 무기를 만들기는 좀처럼 어렵다.

스포츠 경기로 치자면 예선전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무기로 디자인과 이미지라는 무기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당시 청문회 같은 임원회의를 끝내고 회사로 돌아온 필자는 디자이너들과 함께 하루 종일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예정에도 없이 독일의 전동공구박람회에 달려가 세계의 트렌드를 파악하기도 했고 디자인 컨셉트를 추출하기 위해 많은 기술자와 판매상을 만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디자인 전문회사의 노력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의 결단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정상에 서있는 최고 경영자만이 남보다 앞서 사방을 둘러 볼 수 있고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으며 또한 그의 결단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ceo@designato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