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도가 떨어지는 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오던 명동 사채시장이 "고사"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명동에서 어음할인 업무를 하는 사채사무소는 줄잡아 70~80개.

사채업자들은 작년 11월 기업퇴출 발표 이후에만 20~30개 사무소가 간판을 내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채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는 이유는 지난해 말부터 계속된 신용경색으로 사채업자들이 최대한 보수적으로 할인대상 기업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

작년에 동아건설 대우자동차 등 부도기업의 어음을 대거 할인해 줬다가 수백억원을 떼인 사채업자들은 아무리 높은 금리를 준다해도 부실기업 어음은 취급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우량기업의 어음이 많은 것도 아니다.

삼성 LG SK 등 대기업 계열사와 동아제약 등 중견 우량기업의 어음 할인율은 0.7%(연 8.4%)선에 불과하지만 구경조차 할 수 없다고 사채업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보다 다소 신용도가 떨어지는 터보테크 웅진코웨이 등 코스닥 등록기업의 어음은 월 1%선에서 할인해 주지만 그나마도 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대부분 할인된다.

또 다른 사채업자는 "은행에서 할인받을 수 있는 한도를 초과해 사채시장으로 들어오는 어음을 주로 취급하지만 최근에는 웬만큼 우량한 기업의 어음은 은행에서 전부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기업들의 어음발행 물량 자체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000년중 지급결제 동향"에 따르면 기업간 상거래 결제에 이용되는 약속어음 교환실적은 전년에 비해 34.8%나 감소한 10조8백77억원을 기록했다.

경기가 악화됨에 따라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줄이고 있는데다 한은이 연 3%의 저금리로 지원해 주는 기업구매자금 대출과 세금공제 혜택이 있는 구매전용카드 제도가 빠른 속도로 어음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기업구매자금대출과 구매전용카드제도를 통해 기업이 현금으로 결제한 실적은 5조7천4백26억원에 달했다.

사채업자 장모(41)씨는 "어음을 없애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확고한 이상 앞으로 어음물량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며 "사채업자들도 장기적으로는 명동의 어음할인 시장이 사라질 것으로 보고 하나 둘씩 전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