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5년7월 초속 20m의 강한 폭풍우를 동반한 태풍 "페이"가 한반도 남부 해안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원유 62만배럴(8만3천t)을 싣고 전라남도 여천 앞바다에 머물고 있던 유조선은 태풍주의보가 발령된 뒤 공해상으로 대피를 시작했다.

그러나 태풍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해 미처 안전지역에 도달하지 못한 유조선을 때렸다.

대형 유조선조차 자연의 힘 앞에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유조선은 결국 좌초돼 국내 최대 규모의 해양오염사태가 발생했다.

선장 등 관련자들은 줄줄이 구속되고 해운회사와 정유회사는 막대한 금전적인 손실을 입었다.

사고이후 해당 정유회사는 미군으로부터 기상정보를 받아 분석하는 등 일기예보에 따라 업무를 보는 작업 체계를 새로 만들었다.

국내 정유회사들은 단기적인 수입에 급급하기 보다 사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기상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조선 사고처럼 석유관련 사고는 한 번 발생하면 회사경영자체가 흔들거릴 정도로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또 원유수송에 차질이라도 생기면 에너지 공급이 중단돼 공장이 멈추고 시민 생활에 대 혼란이 빚어질 수 밖에 없다.

정유회사들은 온도 변화와 기상조건에 따라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들의 물량을 조절하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거나 눈 비가 많이 올 경우에는 주유소의 차량용 연료 공급은 줄이고 난방유 공급은 늘리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난방유의 대명사격인 등유는 동절기 수요가 하절기보다 12배 가량 많다.

정유사들이 마케팅 전략을 세우기에 아주 까다로운 유종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같은 계절적인 수요변동 때문이다.

SK(주)는 동절기 보일러등유의 경우 월평균 최저기온이 1도 하락할 때 마다 10% 가량 공급 물량을 확대하고 있다.

그만큼 판매량이 증가한다는 통계분석에 따른 것이다.

수송용 연료인 휘발유의 경우 홍수나 집중호후 등 기상 이변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강우영향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10cm의 폭설이 내렸을 경우 공급 물량을 25% 가량 줄이고 있다.

승용차량 운행이 감소됨에 따라 일주일간 판매량이 평균 2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LPG(액화석유가스)차량에 들어가는 부탄과 수송용 경유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예측이 얼마나 정확하게 맞히느냐에 따라 재고비용이 큰 차이를 보인다.

SK(주) 석유사업 마케팅전략팀 이경일 과장은 "통상 수요 예측 오차율이 4.2%인데 오차율을 1.0%포인트를 낮추게 되면 재고비용과 물류비용 등에서 연간 수십 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SK(주)는 국내외 기상정보기관으로부터 받는 기상정보와 기상 요소를 종합적으로 감안한 예측 모델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올겨울 예상치 않은 혹한이 몰아치면서 SK LG정유 현대정유 에쓰-오일 등 정유회사들의 마케팅 부서와 수급관련 부서들은 연일 비상 근무를 하고 있다.

이들의 빈틈없는 준비가 있기에 온 국민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