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 부양에 경제정책의 무게가 실리면서 국민의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구조조정작업이 제대로 마무리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론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병든 부위를 완전히 도려내기(4대부문 개혁)도 전에 환자의 몸집을 키우는데(경기부양)만 골몰하다가는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중병(제2의 경제위기설)을 앓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신문은 80~90년대 사이에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한 나라들의 사례를 통해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점검해 보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좌담회에는 재외공관장 회의차 서울에 온 최성홍 주영국대사, 양동칠 주핀란드대사, 이태식 주이스라엘대사, 문봉주 주뉴질랜드대사등 4개국 대사가 참석했고 최경환 한경 논설위원 겸 전문위원이 사회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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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환 전문위원 =한국경제 회복의 최대 걸림돌이던 금융경색이 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조치 등으로 어느 정도 완화되고는 있지만 기업 금융 공공 노동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이 지연되고 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게다가 국내외 경제여건이 나빠져 경기부진이 예상보다 장기화될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한국 경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요.

△ 최성홍 주영국 대사 =최근 HSBC은행 회장을 만났더니 "한국 사람들은 너무 자기 자신에게 가혹(Harsh)한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그는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4대 부문 구조조정에 착수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가 1백억달러를 넘은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정부 주도형의 구조조정이 이제부터 민간주도형의 상시적인 체제로 바뀌어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원칙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으면 전망은 밝다는게 그의 얘기입니다.

런던금융시장의 평가도 대체로 비슷한 듯합니다.

△ 이태식 주이스라엘 대사 =구조조정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초기 단계에서 보다 강도 높은 추진력을 갖췄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졌을 것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현시점에서는 대내외적인 경제여건이 나빠져 있는 만큼 경제 전체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또 한 가지는 한국 경제의 장점인 대량 생산능력은 지켜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자주 듣습니다.

△ 양동칠 주핀란드 대사 =핀란드는 지난 91년 경제위기를 맞아 IMF(국제통화기금)의 도움을 받았고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구조조정을 추진한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지만 방식에서는 크게 다릅니다.

핀란드가 철저히 시장 힘에 따라 구조조정을 이뤘다면 한국은 정부의 힘에 의존했다는게 그들의 평가입니다.

또 구조조정이 시장의 힘에 따라 이뤄지지 않으면 그만큼 후유증이 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 최 위원 =양 대사 지적과 관련해선 한국에서 구조조정을 끌어낼 만한 시장의 힘이 없었기 때문에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또 최근 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 등과 관련해 개혁작업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요.

△ 문봉주 주뉴질랜드 대사 =뉴질랜드는 지난 84년 IMF 구제금융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위기 극복 노력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일은행 매각, 대우자동차 및 동아건설의 부도 처리와 법정관리에 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현대건설 처리와 관련해서 정부가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개혁 의지에 일관성이 없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구조조정이 시장메커니즘에 의해서 이뤄지지 않으니까 정치적 이해관계가 끼여들 여지가 생겼다는 견해입니다.

△ 최 대사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확고한 정치적 의지와 함께 국민 모두가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인식, 그리고 구조조정에 따른 각종 고통을 함께 감내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있어야 합니다.

영국의 경우 이런 것들이 고루 갖춰졌던 반면 한국에선 부족한게 많은 듯합니다.

구조조정이 어려움을 겪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로 생각됩니다.

△ 최 위원 =영국 핀란드 이스라엘 뉴질랜드는 모두 한차례씩 구조조정을 경험했습니다.

각국의 특징적인 경험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죠.

△ 이 대사 =이스라엘은 지난 85년 경제위기를 맞았습니다.

재정적자가 심화됐고 대외 부채가 GDP(국내총생산)의 1백40%나 될 정도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위기가 심각해지자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는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경우도 노조의 목소리가 컸지만 국민적 공감대라는 큰 틀 안에서 자연스레 해소됐습니다.

한국과는 사회적 컨센서스(합의)를 이끌어내는 노력에서 차이가 났다고 생각됩니다.

△ 양 대사 =한국의 경우 정부는 물론 기업도 구조조정의 필요성에는 공감합니다.

다만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벽에 부딪히는 이유는 사회적인 안전망이 부족한게 큰 이유입니다.

핀란드에서는 과거 대형 은행 두개가 합병하면서 3만명의 직원중 상당수가 퇴직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별다른 반발이 없었습니다.

퇴직 후에도 5백일간 생활을 보장하는 안전망이 구축돼 있고 재취업을 위한 교육체계도 갖춰졌기 때문입니다.

△ 최 위원 =한국의 개혁이 위기가 발생하게 된 근본 원인에 대한 치유보다는 이미 나타난 부실에 대한 치료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 문 대사 =뉴질랜드는 개혁을 추진하면서 법률 제도적인 틀을 바꾸고 국민의 의식과 관행을 변화시키는데 주력했습니다.

종국적으로 의식과 관행이 바뀌지 않으면 지속적인 개혁이 어렵기 때문이죠.

그 결과 평생 직장이라는 관념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정부 부문부터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 전 부처의 차관직을 개방했고 국장급 이하 주요 간부들도 개방직으로 바꿨습니다.

정부부문에서 민간으로, 민간에서 정부부문으로의 이직이 자유로워진 것이지요.

또 근로자 개개인이 꾸준히 자기계발을 통해 상품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틀도 갖췄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열심히 일하는''(work hard) 것에서 ''능률과 유연성을 중시하는''(work smart) 풍토로 완전히 변했습니다.

△ 최 위원 =한국의 경우 경직된 노동시장이 구조조정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어떻에 풀어야 할지 의견을 말씀해 주시죠.

△ 최 대사 =앞서 말했듯이 영국은 노동시장 유연화에 국가적인 운명을 걸었습니다.

무소불위의 세력이었던 노조 반발을 딛고 노동관계 4개 법률을 과감히 뜯어 고쳤습니다.

또 탄광노조와 1년 가까이 대치하면서도 원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영국은 지난해 8백80억달러의 직접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전체 유럽연합(EU)이 투자유치한 액수의 3분의 1이 영국으로 들어옵니다.

또 금융시장을 완전 개방했지만 런던시장이 여전히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남아 있습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는 힘들고 어려운 길이지만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 최 위원 =통상여건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미국 EU 등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의 한국 상품에 대한 수입규제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통상정책에 대한 의견이 있으신지요.

△ 이 대사 =한국은 언제나 개방경제 체제를 주창하지만 통상정책에서 개방을 얘기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게 외국의 시각입니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지만 철저한 개방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지요.

이 과정에서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들은 확실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얻었고 이것이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습니다.

무조건 이같은 방식을 따를 수는 없지만 이중잣대로 통상문제에 접근해선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당장의 문제보다는 장기적인 전략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 최 대사 =EU는 세계교역의 37%를 차지하는 엄청난 시장입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경제적으로 중시해야 할 지역이지요.

그러나 미주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벤처산업 등에서 우리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부분은 보다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세계로 진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리=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