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에 있는 컴퓨터 시스템 개발 벤처회사 L사장은 요즘 고민에 빠졌다.

공대 대학원 학생들을 중심으로 10여명의 연구원들을 자산으로 사업에 뛰어든지 1년여.

미국의 대형 관련업체를 비롯해 국내외 여러 업체가 사업제휴를 제안할 정도로 기술력은 인정받았다.

그동안 피땀 흘려 만든 야심작을 올 상반기중 선보일 예정이다.

하지만 "기술개발만 할 줄 알았지 물건을 어떻게 팔고 시장진출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게 L사장의 고백이다.

경험이 부족하고 마케팅 능력도 없어 개발한 물건을 팔아보지도 못한채 소리없이 사라진 적지않은 주변 벤처기업들을 생각할 때마다 간담이 서늘하다.

그는 회사를 이끌어 가면서 마케팅의 중요성을 매일마다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회사를 제 궤도에 올리기 위해 늦게나마 사장 자신이 직접 공부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양재동에 있는 중견벤처기업 C사의 경우도 마찬가지.

지난해 이 회사는 사회적으로 관심을 불러 일으킨 아이디어 신제품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투자도 적잖이 받을 수 있었다.

입주 2년도 안돼 대학교 창업보육센터를 졸업하고 서울 시내에 대형 사무실도 마련했다.

장밋빛 청사진에 "성공"과 "대박"은 따놓은 당상처럼 여겨졌다.

그렇지만 이 회사가 개발한 제품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산넘어 산"이었다.

각종 관련법규를 검토하고 시장에 제품을 알리고 퍼뜨리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겪어보니 제품개발보다 제품 보급이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는게 이 회사 P사장의 말이다.

결국 장고끝에 기존 금융권에서 적지않은 돈을 들여 "마케팅의 귀재"로 알려진 한 인사를 대표이사 회장으로 스카우트하는 결단을 내렸다.

벤처기업에서 마케팅이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기술력을 지닌 젊은 사장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벤처업계에서 "마케팅"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낀다는 벤처인들이 늘고 있다.

"오직 일등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도는 벤처업계에서 마케팅이 기술력 못지 않은 생존의 "화두"로 벤처인들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

VHS방식 비디오가 기술적으로 뛰어났던 베타방식을 물리쳤고 "QWERT"로 대변되는 구식타자기판이 보다 효율적인 타자기판과의 경쟁에서 승리했듯이 벤처업계에서도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을 보유하고 실행한 기업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실천하는게 바람직할까.

"전체 시장의 특성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한 다음에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는게 중요합니다"(이민교 넥슨 사장)

온라인 게임 전문업체인 넥슨은 매출의 절반 이상이 PC방에서 나오는 특성을 살려 PC방 활성화와 게임보급을 연계했다.

"넥슨존"이라는 새로운 정액 요금체계를 도입한 것.

"넥슨존"에 가입한 PC방 회원사들은 싼 가격에 다양한 온라인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내놓을 새로운 게임들도 추가 가격부담 없이 이용토록 해 PC방과 게임회사 모두 이익을 보도록 했다는게 회사측 설명이다.

지난해 12월 이 요금체계를 도입한 이래 전국에서 1천여개 PC방이 가입하는 등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는 것.

철저한 시장 특성분석 외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기존의 품질과 서비스 가격 시장점유율 등에 집중됐던 마케팅 전략보다 "거시적"인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것을 권유한다.

좁은 국내시장만을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마케팅의 대가 코틀러의 말처럼 "세계적 수준의 마케팅을 통한 수익사업을 구축"할 시대라는 얘기다.

결국 글로벌 수준의 마케팅 전략에 현지 문화를 고려한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접목돼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CDMA방식 계측기기 전문 업체인 윌텍정보통신 장부관 사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회사들이 밀집해 있던 미국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한회에 수천만원의 비용이 드는 전시회에 꼬박꼬박 참가하면서 각 국가의 통신문화에 맞는 다양한 맞춤 제품을 선보여 회사인지도를 높이는 마케팅 전략을 사용했다"며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기술력과 마케팅 전략이 조화를 이뤄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