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곳을 찾지 못하던 부동자금이 움직이면서 오랜 동면에 들어갈 것 같던 시장에 온기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주식을 사기 위한 고객예탁금이 지난 20일 현재 9조원에 육박하고
회사채가 올들어 지난 15일까지 4천9백34억원 어치 순발행됐다.

일부 지역에 한정된 현상이긴 하지만 부동산 급매물이 자취를 감췄고 백화점의 설 매출은 작년보다 30% 가량 늘었다.

그러나 신용도가 낮은 기업은 여전히 돈 빌리기가 어렵고 재래시장에 부는 찬 바람은 매섭기 짝이 없다.

아랫목에 일기 시작한 온기가 전체로 퍼져 시장이 본격적으로 힘을 받으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시장에선 서울 수도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거래가 살아나면서 시세도 소폭의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거래가 뚜렷하게 활기를 띠는 곳은 서울 강남 잠실 목동 일대와 경기도 분당 용인지역 등이다.

그동안 20평형대에 집중돼 있던 매기가 30평형대 이상의 중·대형 아파트로 확산되는 추세다.

이들 지역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지난해 말까지는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였지만 올들어선 구입 문의가 부쩍 늘어나 급매물은 대부분 소화됐으며 가격도 상승세로 반전됐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35평형의 경우 작년말까지는 급매물이 3억원에도 거래가 거의 안됐지만 지금은 급매물이 자취를 감추면서 값이 3억1천만∼3억3천만원 선으로 올랐다.

로열층은 4억원까지도 부른다.

압구정동 현대 51평형도 지난해 말의 5억8천만∼6억원에서 6억2천만원 수준으로 값이 뛰었다.

압구정동의 신현대공인 관계자는 "지난해 추석 이후 얼어붙어 있던 주택시장이 올들어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며 "설 연휴가 지나면 새학기 개학에 맞춰 이사하려는 수요는 일단락되겠지만 오는 3월 중순까지는 강보합세를 보일 전망"이라고 말했다.

서초동 삼풍아파트 34평형도 지난해 말까진 2억3천만∼3억원 선에 물건이 나왔으나 최근엔 2억5천만∼3억3천만원으로 호가가 올랐다.

송파구의 잠실주공 5단지 34평형은 올들어 2천만원 가량 오른 2억7천만∼3억1천만원에 매물이 나오고 있다.

목동 신시가지 일대에서도 급매물이 거의 빠지면서 시세가 강보합세다.

목동 4단지 35평형은 2억7천만∼3억5천만원선,45평형은 4억~4억8천만원 선으로 지난해 말보다 호가가 1천만원 정도 상승했다.

지난 10일을 전후해 갑자기 거래가 늘었다는 게 인근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한동안 얼어붙었던 용인지역의 분양권 시장도 입주가 임박한 아파트를 중심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오는 3월 입주하는 구갈지구 풍림아파트와 5월 입주 예정인 현대아파트의 경우 최근 30평형대에 1천만∼2천만원,20평형대엔 5백만∼1천만원의 웃돈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서울 상계동이나 분당 일산 평촌신도시 등 수도권에서는 지난해 말에 비해 아직은 매도 호가가 별로 오르지 않았지만 문의가 늘어나고 급매물이 조금씩 소화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선 전세값이 오르고 있는 만큼 조만간 매매값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법원 경매시장에서도 5억∼20억원짜리 상가나 고급 아파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상가의 낙찰가율(감정가에 대한 낙찰가의 비율)은 지난해 말까지 60% 안팎이었지만 최근 입찰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우량물건의 경우 70%까지 상승하는 등 오름세가 뚜렷하다.

지난 16일 입찰이 실시된 서초구 양재동의 4층짜리 상가주택(사건번호 2000-37846)은 7명의 입찰자가 몰려 감정가(7억2천3백61만원)의 70.74%인 5억1천1백86만원에 낙찰됐다.

손희식·류시훈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