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의 개혁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국가경쟁력은 환란이전보다 더 추락해 있는 상황이다.

국제경영연구원(IMD) 평가에서는 지난 96년 26위에서 28위로 떨어져 있고, 세계경제포럼(WEF) 평가에서도 20위에서 29위로 추락했다.

환란을 초래한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치유되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환란의 와중에서 외상(外傷) 치유를 위해 치른 값비싼 대가에도 불구하고 체질강화를 위한 경제시스템 개혁은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얘기다.

◆ 무소불위의 공룡, 정부 시스템 =''정부가 날씬해야 경제가 살찐다''는 말이 있다.

정부의 규제와 간섭이 줄어야 민간의 창의가 발휘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현 정부 들어서만 세차례에 걸친 조직개편이 있었으나 세계적 추세인 ''작은 정부''와는 거꾸로 가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우리보다 큰 나라들의 장관급 부처가 15개 내외인데 비해 우리는 22개에 이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70%를 넘는 규제가 완화됐다고 하나 정부간섭 때문에 사업을 못하겠다는 아우성은 여전하다.

IMD는 정부 부문의 경쟁력을 평가대상 47개국중 40위로 평가해 가장 경쟁력이 없는 정부중 하나로 한국 정부를 지목했다.

◆ 뇌사상태에 빠진 금융시스템 =환란 이후 금융기관의 15%가 넘는 5백여 부실금융기관이 정리됐다.

이 과정에서 1백10조원의 1차 공적자금이 소진됐고 40조원의 2차 공적자금을 조성, 투입중에 있다.

그러나 이런 값비싼 대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은 총체적 마비 상태에 빠진지 오래다.

은행권은 우량 불량 가릴 것 없이 통합 회오리에 휘말려 기업자금 대출은 엄두도 못내고 있고 종금 투신 등 제2금융권은 업태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회사채 시장은 1년 이상 뇌사상태에 빠져 깨어날 줄 모르고 있다.

금융시스템이 총체적 마비에 빠진 상태에서 공적자금 수혈로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 작동 멈춘 시장경제시스템 =현 정부의 국정지표인 시장경제 창달 구호가 무색할 정도로 시장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해야 할 금융 기능이 정부의 손으로 완전히 넘어가 신관치라는 ''보이는 손''만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여기에다 극심한 도덕적 해이와 집단이기주의까지 겹쳐 시장규율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시장경제 작동에 필수적인 하부시스템 부실은 더욱 심하다.

우리나라 회계장부를 곧이곧대로 믿는 외국인은 많지 않고 신용등급 A급인 기업의 부도율이 BBB급보다 높을 정도로 신용평가제도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시장경제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원활한 진입 못지않게 적기 퇴출도 중요하다.

배설하지 못하는 환자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퇴출제도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정치적 고려까지 겹쳐 부실을 쌓아가고만 있다.

이렇다 보니 주기적인 이벤트식 퇴출로 경제 전체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 법과 원칙이 안 통한다 =경제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법과 원칙이라는 경기규칙이다.

올바른 경기규칙을 만들고 이를 지켜야 경제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부탁 없이는 되는 일이 없고 ''떼 법''이 헌법보다 더 위에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법과 원칙이 무시되기 일쑤다.

어렵사리 도입된 고용조정제도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부실 기업에조차 적용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다.

노동 현장에서 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경찰이 폭행을 당해도 아무도 문제삼는 사람이 없고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지켜지는 사업장은 그리 많지 않다.

의사도 농민도 목소리만 크게 내면 원칙에 맞지 않는 대가가 주어진다.

''비용은 안 내고 혜택만 많게''가 연금 보험 등 사회안전망을 규율하는 원칙 아닌 원칙이 돼 버렸다.

최경환 전문위원.經博 kgh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