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행의 회사채 인수거부 파문은 ''시장규율''과 ''금융자율''이 서로 마찰을 빚는 중요한 시금석으로 떠올랐다.

금융기관의 공공성과 수익성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정부(감독당국)와 은행 모두 고민하게끔 화두를 제공한 셈이다.

◆ 금감원 입장 =다른 은행들이 다 참여하는 회사채 인수를 제일은행만 거부한 것은 혼자 살겠다는 처사라고 제일은행을 비난하고 있다.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는 이유로 과거 채권시장안정기금이나 채권형펀드 조성에도 제일은행만 번번이 빠졌다.

진념 재경부장관이 "햇볕이 쨍쨍할 땐 기업을 지원하다 소나기가 내릴 때는 외면하는 금융기관은 사라져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제일은행 매각작업에 참여한 정부 관계자는 "제일은행이 기본적으로 해외 유수 금융기관이 아닌 투자펀드(뉴브리지)에 매각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시장안정 등 공익성보다 투자수익률에만 신경을 쓴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강기원 금감원 부원장보는 "선진국에서도 정부가 특정정책에 협조를 요청하면 금융기관들이 큰 피해를 보지 않을 경우 받아주는게 관행"이라며 제일은행의 인수거부에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은행 경영평가때 지역사회 기여도를 따지는 나라도 많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지역사회투자법(CRA)''으로 금융기관의 공익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영국도 지역사회 기여도가 낮은 은행에는 중앙은행의 재할인 제한 등 징계를 내린다.

◆ 제일은행 입장 =한마디로 정부가 회사채 인수를 강제로 할당하는 것은 잘못됐고 제일은행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일은행 관계자는 "회사채를 인수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은행이 독자적인 기업심사 결과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입장은 금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정부당국의 목표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관치금융적 수단에 대해 반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제일은행이 정부의 정책을 받아들여 현대전자나 현대건설 등의 회사채를 인수할 경우 부담은 올 한해 3백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당장 문제가 되는 1월에 인수할 금액은 40억원 선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제일은행이 현대전자에 1천억원의 자금을 빌려준 적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 문제의 핵심은 금액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다.

◆ 현대전자 차환발행 무산 배경 =제일은행이 인수를 거부한 데다 다른 은행들은 금리가 적정치 않다며 반발, 현대전자 회사채 2천억원어치의 차환발행이 보류됐다.

지난 3일과 5일 만기도래한 현대전자 회사채는 2천4백84억원.

이중 4백84억원은 현대전자가 자체 해결했고 나머지(2천억원)는 인수보류로 연체상태가 된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대전자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으로부터 현대전자 회사채 차환발행 금리가 공모사채 수준(연 11∼12%)에서 결정됐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현대전자에 대한 시장금리보다 2∼4%포인트 낮은 수준이어서 특혜를 주는 꼴이라는게 채권은행들의 반응이었다.

사실상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에 대한 금융비용 감축혜택과 같은 격이라는 지적이다.

현대전자가 해결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다른 은행의 관계자는 "현대전자와 달리 시장금리가 연 15∼25%가 넘는 일부 기업들의 차환발행 때 금리와 기간 등 인수조건을 둘러싸고 채권금융기관간 이견이 빚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며 "오는 8일 결정될 현대전자 차환발행 기준이 앞으로 산은을 통한 회사채 인수계획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하 기자 haha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