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8월 부도를 낸 뒤 2년여간 표류했던 동신제약이 극적으로 회생했다.

4일 주식이 관리종목에서 일반종목으로 복귀되고 은행에서도 당좌거래계좌가 개설됐다.

하지만 동신제약은 이날 파티를 열지 않았다.

지난 고통의 시절을 잊지말자는 의미에서였다.

동신제약의 회생은 종업원들의 헌신적인 ''회사사랑''으로 맺어진 결실이었다.

월급도 없이 지하실 공장 오피스텔을 전전하며 이루어낸 눈물의 재기였다.

혈액제제를 독점 생산하며 잘 나가던 동신제약이 위기를 맞은 것은 97년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부터다.

제약사업은 괜찮았지만 유영식 당시 회장이 무리하게 골프장(현재 문막 센츄리21CC)을 지은 게 화근이었다.

외환위기로 회원권 분양이 안되자 부도가 나 법정관리를 받게 됐다.

재미사업가 김세현씨가 외자를 유치해 살리겠다며 회사를 인수했지만 김씨는 잿밥에만 관심을 보였다.

당초 6백억원대에 달하는 유 회장 소유의 동원산업 건물을 팔아 빚을 갚기로 하고는 시간을 끌며 가로채려 들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임직원들을 잘라내고 측근으로 교체했다.

분위기가 나빠지자 유능한 직원들은 스스로 회사를 떠났다.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데 뜻이 모아지면서 쫓겨난 임직원들이 서울 수서동에 오피스텔을 얻어 회사살리기 투쟁에 들어갔다.

임대료와 소송비용은 주머니를 털어 부담했다.

끈질긴 법정투쟁 끝에 작년 5월 김 사장이 공금횡령으로 구속됐다.

차례차례 복귀한 임직원들은 회사 빚 줄이기에 나섰다.

한푼이라도 아끼자며 사무실을 건물 지하로 옮겼다.

사무실이라기엔 너무도 초라했다.

칸막이도 응접실도 없었다.

이들은 골프장과 본사사옥 동원산업 건물 등을 경매해 빚을 5백70억원으로 줄였다.

채권자들을 설득해 또 절반을 탕감받았다.

개인채권자와는 원금의10∼25%만 일시불로 갚는 조건으로 타협을 봤다.

경영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전 직원이 마케팅 전선에 뛰어들었다.

축적된 기술력이 있는 데다 종업원들의 노력을 높이 산 투자자들이 나타났다.

국민은행과 한국기술투자,KTB네트워크 등이 자금을 댔고 한미약품이 대주주가 되면서 공신력이 회복됐다.

지하실 시대를 마감하고 사옥을 수서동 브이밸리로 옮기기 직전인 작년 11월 동신제약 임직원들은 파티를 열었다.

하지만 음식은 캔맥주 하나가 전부였다.

''지하실 시절''을 잊어선 안된다는 각오가 축사였다.

4일 주식이 일반종목으로 전환되자 이종지 사장은 직원들에게 한가지 약속을 했다.

작년처럼 혼신의 힘을 다 한 뒤 올 연말에는 샴페인으로 파티를 열겠다는 약속이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