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앞에 거대한 신산업 시장이 다가오고 있다.

그 시장의 이름은 크레비즈(Crebiz)다.

크레비즈는 벤처분야에서 네번째로 밀려오는 물결이다.

지금까지 벤처분야에 밀려온 물결은 첫째가 첨단제조업 분야였고 두번째가 IT(정보기술)와 인터넷이었다.

세번째 물결은 바이오다.

이제 네번째의 물결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제4 물결은 지금까지의 벤처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혁명적인 것이다.

크레비즈란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Creative Business)를 줄인 말.

이는 미국에서 처음 쓰인 말이지만 일본에선 이를 창조산업, 기업의 창조활동 등의 뜻으로 많이 쓰고 있다.

크레비즈가 발생하게된 것은 벤처의 단점이 여기저기 나타나면서부터다.

벤처가 한계점을 드러내면서 생겨난 것이다.

크레비즈는 벤처와 컬처(Culture)가 결합해 만들어낸 새로운 시장이다.

이 시장에선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캐릭터가 자산이 된다.

자신만의 컨셉트가 거대한 보물창고가 되는 셈이다.

크레비즈는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를 e비즈니스와 접속시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무형문화재는 경제적 가치가 크게 높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e비즈니스와 만나면서 새로운 경제가치를 창출하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세계 최초의 대규모 크레비즈는 벨기에의 프랑드르 랭귀지 밸리(FLV) 프로젝트다.

이는 벨기에의 이푸레에 거대한 귀모양의 캠퍼스를 설립하고 인터넷에서 언어를 자동으로 번역해 주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벨기에가 이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벨기에 특유의 컬처 덕분이다.

지금까지 벨기에의 역사는 언어분쟁의 역사였다.

벨기에는 언어 때문에 남북이 갈린 나라다.

이 때문에 벨기에인들은 보통 4개국어를 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6개국어까지 능숙하게 쓴다.

이런 컬처가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FLV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어냈다.

한국인은 기(氣)가 손 끝에 있다.

손으로 하는 경기나 게임은 무엇이든 세계 1위를 넘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컬처를 e비즈니스 수단을 통해 상품화하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 할 수 있을 것이다.

청주에 있는 마그네틱 부품을 만드는 자화전자에서 한때 낚시 찌에 센서를 달아 고기가 물면 불이 켜지는 것을 상품화했다.

이 센서찌는 야간 낚시에 안성맞춤이어서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참 좋았다.

그래서 수출을 많이 했다.

그러나 한국에선 처음에 조금 팔리다가 얼마가지 않아 더 이상 팔리지 않았다.

고기가 물었을 때 손끝에 와 닿는 맛이 없다면서 사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세계적인 야구선수나 골프선수가 많은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한국에선 손으로 느끼는 컬처를 상품화하면 뜨는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

꼭 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의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관은 여러 가지가 있다.

눈은 보고 귀는 듣고 코는 냄새를 맡는다.

이들 감각기관의 기능을 더욱 확장시켜 주면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몸의 감각은 기능별로 전혀 다른 컬처를 가지고 있다.

그림을 감상할 때 느낌, 음악을 듣는 기분, 노래를 부르는 즐거움처럼 각각 다른 컬처를 지녔다.

멀티미디어는 이런 즐거움을 통합해 버렸지만 크레비즈 시대엔 이런 기능을 각각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진전되며 더 전문화되는 성향을 나타낸다.

<>눈=적외선제품, 정밀화면 TV, 정밀카메라, 얇은 렌즈안경, 휴대용네비게이터 등 <>코=공해방지 센서, 맑은 공기제품, 자연산 향수, 식용 향료 등 <>입=휴대용 가라오케, 무공해 음식점, 자동 음성번역기, 음성문자 전환 등 <>발=장애자 및 노인용 전지차, 무소음 전기차 등.

여기서는 일부 품목만 소개한 것이지만 각자 가지고 있는 캐릭터와 경험, 기술을 기초로 생각하면 수많은 신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크레비즈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크레비즈 시대에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선 약물에 의한 건강회복은 퇴조하는 반면 즐겁게 놀면서 건강을 지키는 상품이 부상한다.

그래서 운동용구도 헬스클럽이나 방안에서 땀을 빼며 운동하는 기구보다 야외로 나가서 피부로 즐길 수 있는 아이템이 잘 팔리게 된다.

자신의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해 건강을 상징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강조하는 품목들도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낼 전망이다.

우리는 한 제품의 기능에 대해 고정적인 관념이 많다.

식품 음료 화장품 술 등은 감각적인 상품으로 생각하지만 자동차는 빨리 가야 하는 기능적인 기구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고급 차를 타면 왜 즐거워지는가.

탄력성과 안정감에도 있지만 엔진소리, 바람이 마주치는 소리, 배기음, 카오디오의 음향, 타이어 마찰음 등이 안온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

자동차의 생명은 바로 "소리"에 있는 것이다.

자동차는 "귀"를 즐겁게 하는 상품인 셈이다.

최근들어 일본의 경우 인터넷에선 미국에 뒤졌지만 일본특유의 컬처를 활용하면서 미국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이른바 포터블 컬처(Potable Culture)를 이용하고 있다.

워크맨 문화 등 포터블 컬처를 인터넷에 접목시키면서 인터넷에서도 또다른 방향으로 미국을 따라잡고 있다.

인터넷 활용인구 측면에선 일본이 미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만 휴대전화인 네트폰을 통한 인터넷 활용률은 미국을 뛰어넘었다.

소니가 후지TV에 참여한 것도 크레비즈 시대를 겨냥한 것이다.

이제 기술력보다는 문화력을 가진 콘텐츠가 더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후지TV의 콘텐츠와 소니의 기술력을 결합, 인터넷과 공중파 디지털 방송을 활용한 쌍방향 서비스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의도인 것이다.

지오그래픽도 기존의 컨텐츠와 컬처를 비즈니스로 활용하기 시작한 전형적인 모델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1888년 미국에서 설립된 자연과학 전문 NPO(비영리조직)로 생생한 사진화면의 잡지 4개 종류를 통해 자연 지리 인류학 고고학 등을 차분하게 다뤄왔다.

덕분에 신뢰도가 매우 높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세계 3대 네트워크인 NBC와 손을 잡고 세계 각국에 TV를 통해 콘텐츠를 공급하기 시작해 큰 성공을 거뒀다.

크레비즈는 이처럼 문화적인 측면에서 접근,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경제법칙보다는 문화법칙이 우선한다.

이는 정보혁명에 이어 창조혁명을 불러오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크레비즈 사회인 창조화 사회는 컴퓨터보다는 컨셉트가 중요하고 경박단소(輕薄單小)보다는 가상무한을 지향하게 된다.

21세기는 소프트웨어의 시대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소프트웨어라고 부르는 인터넷관련 비즈니스는 이제 하드웨어가 되고 말았다.

인터넷도 하나의 도구로 하드웨어 부문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요즘 이런 분야를 "뉴하드웨어"라고 한다.

이제 진정한 "뉴소프트웨어"는 콘텐츠화할 수 있는 컬처뿐이다.

뉴하드웨어를 상품화하는데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뉴소프트웨어를 상품화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뉴소프트웨어가 뉴하드웨어를 활용해 만들어내는 크레비즈야말로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다윗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치구 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