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세계경제는 비교적 기분좋은 출발을 했다.

연초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소위 "Y2K" 문제가 별탈없이 넘어가면서 1999년을 뜨겁게 달군 인터넷 열풍은 연초에도 계속됐다.

세계경제에는 그러나 곧 고유가의 폭풍이 몰아쳤다.

2월부터 급등하기 시작한 국제유가는 3월들어 배럴당 30달러선을 훌쩍 넘어섰다.

그후 한동안 떨어지던 유가는 팔레스타인에서의 유혈분쟁과 예멘에 정박중이던 미국 구축함에 대한 폭탄테러로 중동지역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9월에 배럴당 37달러를 넘어서 1991년 걸프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유가의 와중에서도 장기호황을 구가하던 미국 경제는 상반기까지는 별로 지친 기색 없이 달려왔다.

소비도 여전했고 경제성장률도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자 당연히 인플레 고조 등 경기과열 우려가 제기됐고 미국의 경제경찰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상반기에만 세 차례 금리를 올렸다.

고유가라는 ''외생변수''에도 불구하고 앞만 보고 달려오던 미국 기업들은 금리인상이라는 ''내생변수''까지 겹치자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소위 ''신경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 열풍은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급속히 식기 시작했다.

전세계를 인터넷 열풍으로 몰어넣었던 닷컴기업들이 대거 도산하거나 다른 업체에 인수됐다.

살아남은 업체들도 지금은 주가 폭락과 막대한 손실로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닷컴기업의 대명사 야후의 주가는 한때 주당 2백50달러 가까이 올랐으나 최근에는 20달러대에 머무르고 있다.

아마존의 주가도 한때 1백달러를 넘나들었지만 최근에는 15∼16달러선에 불과하다.

닷컴기업의 젖줄이던 벤처자금도 최근엔 바짝 말라버렸다.

이같은 상황에서 소위 구경제 기업들마저 속속 어두운 영업전망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10년 가까운 장기 호황을 구가하던 미국 경제도 드디어 하반기부터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3.4분기 경제성장률은 2.2%로 1996년 3.4분기 이후 4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월가에서는 4.4분기 성장률이 이보다 더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금융시장 불안으로 은행의 대출이 급속히 위축되고 있으며 회사채 수익률과 기업어음 수익률이 크게 오르고 있다.

이제는 미국 경제의 침체를 걱정하는 시각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일본 경제가 장기불황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경기마저 하강국면으로 접어들자 세계경제 전체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신흥 국가들은 주가와 통화가치의 동반하락 현상을 겪고 있다.

세계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해온 미국경제가 내년에 연착륙에 성공할지, 아니면 경착륙으로 경기침체에 빠질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선태 기자 or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