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벤처기업들은 2000년 한햇동안 천당에서 지옥을 오갔다.

연초 뉴밀레니엄의 희망을 안고 벤처열풍이 불었지만 어느샌가 벤처 거품론이 퍼져 나갔고 뜨거웠던 코스닥시장도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무늬만 벤처인 기업인들의 불법행위가 잇따라 드러나 벤처업계 전체가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그야말로 희망으로 시작해 위기로 막을 내리는 한해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 한해를 정리하며 한국경제신문은 "2000년 벤처업계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10대 뉴스는 벤처리더스클럽(회장 김일섭) 회원인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 50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여 뽑았다.

#1 최고서 최저 폭락 코스닥

올 3월10일 코스닥 지수는 283.44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작년 4월부터 오름세를 타기 시작한 코스닥 시장은 1년 가까이 떨어질줄 모르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벤처기업들은 너도나도 코스닥 시장에 진출했고 수천억원대의 벤처갑부가 탄생, 화제를 뿌렸다.

그러나 지난 4월이후 미끄러지기 시작한 코스닥 시장은 연말이 다가오면서 급락양상을 보이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스닥이 곤두박칠지면서 경영위기에 직면하는 벤처기업들이 속출했다.

#2 정현준.진승현 사건 ''얼룩''

올해 벤처기업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든 사건중 하나다.

정현준(32) 디지탈라인 사장, 진승현(28) MCI코리아 사장은 주가조작 등 머니게임으로 돈을 벌어 문어발식으로 벤처기업과 금융기관에 투자했다.

이들은 계열 신용금고 등으로부터 불법대출을 받았다가 감독당국에 적발됐다.

이들 사건은 벤처기업의 재벌식 문어발 확장과 도덕적 해이라는 이슈를 불러 일으키면서 벤처기업 전체를 도마 위에 올리는 계기가 됐다.

#3 리타워텍 등 A&D 열풍

벤처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코스닥 시장에선 전통 제조업체를 인수한 뒤 인터넷 지주회사 등으로 변신시켜 주가를 띄우는 소위 A&D(인수후 개발)라는 신종 M&A(인수합병) 기법이 유행했다.

대표적 케이스가 보일러 부품업체였던 파워텍.

미국의 리타워그룹(회장 최유신)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이 회사를 인수, 인터넷 지주회사로 탈바꿈시키면서 주가를 수십배나 끌어 올렸다.

그 이후 개나리벽지 동특 한일흥업 바른손 등이 A&D 열풍을 이끌었다.

#4 메디슨, 한컴 지분 매각

메디슨(대표 이민화)은 한글과컴퓨터 소유지분 절반을 싱가포르텔레콤의 자회사인 비커스 발라스에 지난 11월 팔았다.

이로써 한글과컴퓨터 지분중 7.28%를 가진 홍콩의 투자회사인 웨스튼애버뉴가 이 회사의 1대주주 자리를 차지했다.

한글과컴퓨터의 지분 매각은 대표적인 벤처기업 메디슨이 자금난에 몰려 계열사 지분을 매각했다는데 더 큰 관심이 모아졌다.

메디슨의 한글과컴퓨터 등 계열사 지분매각 조치는 벤처기업의 자금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혔다.

#5 벤처캐피털 설립 ''우후죽순''

벤처투자가 잇따라 대박을 터뜨리면서 창업투자회사 등 벤처캐피털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지난해말 87개였던 창투사는 지난 11월말 1백48개로 늘었다.

1년사이 두배 가까이 증가한 것.

특히 올 상반기중에 벤처캐피털 설립이 몰렸다.

벤처캐피털 급증은 벤처기업의 투자유치 기회를 넓혔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반면 시중의 사채자금까지 벤처투자에 몰려 벤처시장을 혼탁하게 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6 인터넷 통한 주식공모 유행

올초 인터넷을 통해 주식공모를 하는게 붐을 이뤘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주식공모만 하면 투자가들이 벌떼처럼 몰렸다.

수많은 벤처들이 금년 상반기중 인터넷 공모를 실시, 자금을 유치했다.

인터넷 공모엔 직장인 주부 대학생 등이 대거 참여해 벤처투자가 일반화되기도 했다.

벤처에 투자하기만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무분별한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7 바이오벤처, 닷컴 대안 부상

마크로젠(대표 서정선)이 올초 성공적으로 코스닥에 등록되면서 바이오 벤처기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잇따라 코스닥에 들어온 바이오 벤처기업들은 하나의 테마주를 형성했었다.

프리코스닥에 있는 바이오 벤처기업들의 주식도 장외에서 상한가를 쳤다.

특히 미국의 인간게놈프로젝트 결과가 발표돼 바이오벤처에 대한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특히 바이오 벤처기업들은 거품 논쟁이 일었던 닷컴 벤처들의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8 대기업 인력 벤처 ''엑소더스''

대기업의 우수인력들이 벤처행 열차에 탔던 것도 올해 화젯거리였다.

안정된 직장과 미래를 버리고 언제 망할지도 모를 벤처기업으로 옮기는 직장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구조조정에 따른 퇴출인력이 아니라 대기업에서도 촉망받던 사람들이 벤처로 직장을 옮긴 것은 벤처에 대한 희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벤처기업이 위기에 몰리면서 대기업출신 인력들의 U턴현상이 나타났다.

#9 인터넷기업협회 출범

옥션 한글과컴퓨터 골드뱅크 한솔CSN 팍스넷 등 국내 인터넷 벤처기업 1백여개사가 참여한 한국인터넷기업협회(KICA)가 올 3월 결성됐다.

옥션의 이금룡 사장이 회장을 맡은 이 협회는 벤처기업협회와 함께 국내 벤처기업들을 대표하는 단체가 됐다.

인터넷기업협회는 닷컴기업의 거품논쟁때 인터넷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와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되돌리는데 한몫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10 한민족 글로벌 벤처네트워크

위기에 직면한 벤처기업들에 화두로 떠오른 것이 글로벌화.

우물안 개구리처럼 국내에서만 뛸게 아니라 넓은 세계시장으로 진출해야 하는건 피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했다.

때마침 벤처기업협회와 한국경제신문 등이 12월초 서울에서 개최한 한민족 글로벌 벤처네트워크 2000(INKE 2000) 행사는 한국 벤처기업들의 글로벌화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