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주 두차례에 걸쳐 자금시장 안정책을 내놓은데 이어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한 처방전을 들고 가세했다.

돈을 풀어서라도 급한 불은 꺼야 한다는 당국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이 자금경색을 완전히 풀어내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 금융시장 공백 =주식 회사채 등 직접금융시장에다 은행 상호신용금고까지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가 모두 막혀 버리는 등 연말 금융공백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회사채 시장은 마비상태에 몰려 일부 4대 대기업 회사채마저 유통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연말까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10%까지 올려야 하는 은행권이 대출 회수에 나서 지난달 대기업들은 1천3백91억원을 회수당했다.

더욱이 은행의 신용문턱을 넘기 어려운 중소기업과 영세상인들이 주로 기대는 상호신용금고도 예금인출 사태로 집단고사 위기에 몰렸다.

◆ 한국은행 대책 =한은이 ''전가의 보도''인 발권력을 빼들고 나섰다.

한국은행은 우선 총액대출한도를 2조원 늘리는 한편 배정방식도 중견대기업을 포함한 기업대출이 많은 금융기관이 자금을 더 많이 배정받을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변경키로 했다.

한은은 유동성조절 대출한도를 3조원으로 1조원 확대하는 한편 심사할 때도 기업에 자금을 많이 지원한 은행이 우대받을 수 있도록 운영키로 했다.

또 예금보험공사가 상호신용금고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예보채를 발행할 경우 이를 원활히 소화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어음발행에 따른 연쇄도산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제란 새로운 제도도 신설키로 했다.

납품업체가 납품을 마치고 외상매출채권만을 담보로 거래은행에서 대금을 조기에 현금으로 회수하면 일정기간이 지난뒤 구매기업이 이 돈을 상환하는 제도다.

◆ 효과 =한은이 돈을 푼다고 기업의 자금 가뭄이 해갈될지는 의문이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당면한 금융시장 경색현상은 유동성 부족 탓이 아니라 금융시스템이 제기능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금융구조조정이 마무리되기 전까진 금융 불균형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용금고가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에 대출해준 돈은 10월말 현재 10조원에 달한다"며 "한은이 총액한도대출을 2조원 늘리는 것만으로 은행이 신용금고를 대신해 영세 중소기업의 자금수요를 지원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세진 한국채권평가 사장은 "자금시장 경색이 해소되지 않으면 금융불안이 증폭돼 내년 하반기 경제회복도 물거품이 된다"며 "이번에 공적자금이 들어가는 부실은행중 하나를 기업금융 전담은행으로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