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부실에 이어 가계부실이 내년 경제의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계파산이 늘어나면 금융기관들의 자산 건전성이 악화돼 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이 축소되고 그만큼 투자나 소비가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질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개인들의 경제적인 고통이 가중되면서 구조조정과 맞물려 사회적인 갈등으로 폭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이 시급하다는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 가계빚 급증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가 금융기관 등에서 빌린 돈(가계신용 잔액)은 지난 6월말 현재 2백37조5천억원으로 작년말 2백13조원보다 24조5천억원(11.5%)이나 증가했다.

1년전(1백92조6천억원)에 비해 23.3%나 늘어난 셈이다.

가계신용 잔액은 작년 1.4분기부터 늘어나기 시작해 6분기째 확대일로다.

소비자금융과 신용카드 발달 등 소비자신용이 확산되면서 개인이 파산할 위험도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말 현재 국내 신용카드사들의 전체 매출(1백41조3천억원) 가운데 할부나 일시불 신용 구매가 아닌 현금대출은 88조3천억원이나 됐다.

1년전의 28조2천억원보다 무려 2백12%나 늘어난 액수다.

IMF 사태 이후 감소세를 보이던 은행의 가계대출도 주식시장의 활황과 은행권의 가계대출 확대 노력에 따라 지난해 19조원 늘어난데 이어 올해는 이미 22조원이나 증가했다.

경기하강과 주식시장 침체가 맞물려 그동안 빚으로 주식투자에 나섰던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파산 위기에 직면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 가계파산 양산조짐 =신용불량 거래자가 늘어나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금융공동전산망에 등록된 신용불량자(법인 포함) 수는 10월말 현재 2백38만2천7백17명으로 경제활동인구 10명당 1명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말(2백25만65명)에 비해 13만명 이상 늘어난 숫자다.

특히 신용불량자는 연체 뒤 3∼6개월 뒤 등록되기 때문에 최근의 급격한 경기 위축을 감안하면 앞으로 수개월간 신용불량자 급증세는 계속될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금융권은 가계연체 관리를 강화하고 나서 신용불량자가 양산될 전망이다.

은행연합회는 내년 1월2일부터는 연체금액에 상관없이 은행대출금이나 카드론 대금, 할부금융 대금 등을 3개월 이상 연체하면 불량거래자로 등록키로 했다.

H은행 관계자는 "가계부실에 대비해 신용대출은 가급적 피하고 있다"며 "개인대출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담보대출도 담보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차주의 소득과 직업 등 미래상환능력을 따져 대출줄을 조이고 있다"고 들려줬다.

◆ 전문가 견해 =조홍래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 각종 경제지표가 급속히 악화될 것으로 보여 개인부실이 급증할 전망"이라며 "무엇보다 증시가 안정돼야 대량 가계파산 위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려대 조명현 교수는 "현재의 가계버블은 확실한 신용점검 없이 경쟁적으로 가계신용을 늘린 금융기관에도 책임이 있다"며 "특히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이 개인이나 금융기관에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소비자파산 제도를 통한 면책판정을 남발할 경우 채권자 권익이 침해되고 도덕적 해이가 초래될 수 있으므로 파산원인에 따라 면책 범위가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병연.박민하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