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인 한국감정원이 출자한 한국부동산신탁의 부채비율은 1천8백79%(올 7월말 기준)에 이른다.

''정부가 출자한 공신력있는 부동산신탁회사''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지난 91년 출범한 이 회사는 놀고 있는 땅을 대신 개발해 주고 땅주인에게 개발이익을 돌려주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 기능은 거의 마비된 상태다.

한국자산관리공사(옛 성업공사)의 자회사인 코레트신탁(옛 대한부동산신탁)도 지난 98년 차입금이 자기자본의 1백8배인 6천3백95억원에 달했고 지금도 경영여건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현재 한국부동산신탁과 코레트신탁은 각각 70여곳의 개발신탁 사업장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 공사가 중단돼 있다.

이런 실정인데도 이들 두회사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는 회사설립 9년째인 지난 4월 처음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정부가 5천억원을 출자, 공기업으로 편입된 대한주택보증(옛 주택사업공제조합)도 정부의 감독소홀로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붓고 있는 사례로 꼽힌다.

건설회사가 아파트를 짓다가 부도낼 경우 완공할 수 있도록 보증을 서는 역할을 하는 대한주택보증은 주택건설업체의 줄도산으로 업체들에 사실상 떼인 돈만 1조9천억원에 이른다.

대한주택보증은 현재 자본잠식상태에 빠져 정부에 2조원의 자금지원을 요청해 놓고 있다.

물론 대한주택보증의 부실은 주택사업공제조합에서 대물림된 것이란 측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주택공제조합의 대출 및 분양보증은 주택건설촉진법에 의거,정부업무를 위임받은 것이고 조합의 의사결정기구인 운영위원회 멤버로 건설교통부 과장급 1명이 포함돼 있은 만큼 정부는 감독소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이같은 부실과 감독소홀의 악순환은 부동산신탁이나 대한주택보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대한주택공사의 자회사인 뉴하우징의 부채비율은 1천19%에 달한다.

주택공사의 또 다른 자회사인 한양은 부채를 견디다 못해 최근 파산선고를 받았다.

공기업이 출자 또는 투자한 자회사나 정부업무를 위임받은 산하기관들이 부실해지는 일자척 원인은 정부의 감독소홀과 원칙없는 인사에서 찾을 수 있다.

공기업 자회사나 산하기관들이 모회사 감사실로부터 감사를 받기는 하지만 그것은 ''눈가리고 아웅''식이다.

모회사 출신들이 자회사에 포진해 있기 때문에 엄격한 감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탓이다.

자회사나 산하기관의 ''낙하산 인사''도 모회사 뺨친다.

국감자료에 따르면 한국전력이 올해초 설립한 파워콤의 임원 4명중 3명이 한전 출신이다.

한국석유공사가 해외유전 개발을 위해 만든 2개 회사의 경영진 9명은 모두 석유공사에서 내려 왔다.

한국통신이 투자 또는 출자한 한국통신파워텔 한국통신기술 등 9개 자회사의 임원 48명 가운데 35명이 한국통신 간부를 역임했다.

그나마 모회사 출신의 공기업 자회사 임원들은 업무의 연관성이라도 있다.

그렇지만 산하기관 임원은 정치권에서 맴돌던 인물들 차지다.

"여당의 공천탈락자나 집권당의 야당시절 당료들이 어디 있는지 알려면 산하기관 임원명단을 찾아보라"는 우스갯 소리까지 나돌고 있다.

정부도 나름대로 이같은 점을 인식, 내년 2월까지 43개 공기업 자회사의 정비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부실한 자회사와 비핵심부문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와 협의, 매각 청산 외부위탁 등으로 정리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대로 자회사 처리문제가 신속히 마무리될지는 미지수다.

국책연구소인 KDI의 한 연구원은 "모기업 경영혁신 프로그램을 다루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자회사 개혁을 효율적으로 단행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김호영 기자 hykim@hankyung.com